개그맨은 노래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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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가요계에 누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개그맨 박성광은 지난 6일 트위터를 통해 가수 은퇴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서 “저희의 누추한 앨범이 심혈을 기울여 고난의 작업 끝에 나온 앨범과 경쟁한다는 데 몸둘 바를 모르겠다. 저희에게 음원 1위가 가당키나 하겠는가”라며 “이 앨범을 끝으로 가요계를 물러나겠다”고 전했다.

박성광, 신보라, 정태호, 양선일로 구성된 ‘용감한 형제들’은 지난 2월 KBS2 <개그콘서트>에 처음 등장했다. 힙합의 ‘라임’이나 ‘디스’ 등 다양한 화법을 이용한 무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시청자들의 호응이 커지자 3월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라는 데뷔 싱글을 발표해 각종 음악 차트를 휩쓸었고, 이후 5월 ‘아이 돈 케어’, 7월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싱글을 발표하며 ‘개가수’(개그맨+가수) 신드롬 중심에 섰다.

KBS <용감한 녀석들> | KBS 제공

KBS <용감한 녀석들> | KBS 제공

‘용감한 녀석들’의 가수 은퇴 선언은 한 힙합 가수의 비난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11월 27일 힙합 가수 이센스는 “개그맨들이 힙합 흉내내는 것이 보기 싫다”는 글을 게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개가수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UV, 뚱스, 용감한 녀석들 등 특정 개그맨을 겨낭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며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용감한 녀석들’ 측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건 음악인데 저희에겐 즐거움이란 게 마음이 아팠다”며 “이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듯하다. 이번 앨범을 끝으로 가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재치 있는 가사, 무대감각으로 무장한 개가수들의 활약이 최근 현상만은 아니다. 1990년대 틴틴파이브를 시작으로 컬투, 나몰라패밀리 등이 큰 성공을 거뒀다. 틴틴파이브는 당시에는 금기처럼 여겨지던 개가수의 가요프로그램 출연을 성사시켰다. 나몰라패밀리가 부른 ‘사랑해요’는 다운로드 40만건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빅뱅의 ‘하루하루’, 이효리의 ‘헤이 미스터 빅’ 등과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를 다퉜다.

여러 방면으로 입증된 개가수들의 실력과 인기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은 여전하다. 노래가 인기를 얻어도 개가수들의 가요프로그램 출연은 아직 금기에 가깝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쳐나면서 ‘전국민의 가수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유독 개가수 활동에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

KBS <용감한 녀석들> | KBS 제공

KBS <용감한 녀석들> | KBS 제공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이들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줬다. 용감한 형제들의 ‘화장실에 가면은 가방들고 기다려/그 백이 니 몸값보다 비싸/음식사진 찍을 땐 먹지 말고 기다려/니가 먹을 수 있는 건 무한리필 빵’ 같은 가사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대중에게 즐거움을 줬다. 하지만 이런 웃음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건 음악인데 저희에겐 즐거움이란 게 마음이 아프다”는 은퇴의 변이 된다.

용감한 형제들은 인기에 대한 보답으로 각종 기부활동도 펼쳤다. 첫 싱글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의 수익금 6000만원 전액을 기탁했다. 기부금은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전달됐다. 지난 9월 서울 연세대에서 개최한 콘서트 수익금 1억5000만원 역시 등록금을 필요로 하는 대학생들에게 기부했다.

KBS <용감한 녀석들> | KBS 제공

KBS <용감한 녀석들> | KBS 제공

도대체 누가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하는 용감한 형제들의 노래를 멈추게 한 걸까.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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