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민정음’과 방송사의 우리말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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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민정음’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단어는 아이돌 가수의 ‘돌’과 ‘훈민정음’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해외의 K팝 팬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를 영어로 번역하면 ‘디 올디스트 멤버(The Oldest Member)’ 정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K팝 팬들은 이를 영어나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그냥 ‘형(Hyung)’이라고 씁니다. 여자 팀에서 같은 위치에 있는 멤버는 ‘언니(Unnie)’라고 부릅니다. 가장 나이가 어린 멤버에게도 ‘더 영기스트 멤버(The Youngest Member)’가 아닌 ‘막내(Maknae)’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한국어의 소리를 그대로 가져와 알파벳으로 표기만 한 이런 방식을 돌민정음이라고 합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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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이 ‘세계적’ 인물로 떠오르면서 이처럼 돌민정음이 사용되는 모습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10월 6일 뉴욕 시티필드를 가득 메운 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방탄소년단에 관한 콘텐츠를 접하고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쓰는 돌민정음은 팬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은 신선함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국내에서 한글은 영어에 밀려 대접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굳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인데도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해외 K팝 팬들이 한국의 가수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한글식 표현을 익히고 있는 것을 보면서 뿌듯함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글을 제대로 아끼고 사랑하며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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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뉴욕 콘서트 취재 현장에서 만난 K팝 팬들은 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한국 방송에서는 한국어 표현을 놔두고 영어식 표현을 많이 쓰냐고 말입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뉴스를 번역해 수용하는 그들은 정체성도 의미도 불확실한 그 용어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국내 방송사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지고 있는 우리말 훼손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한 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행사러(행사를 하는 사람)’ ‘뷰리Full(아름다운)’ ‘갓창력(뛰어난 가창력)’ ‘씐나씐나(신나신나)’ ‘띵곡(명곡)’ 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별 뜻 없이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뉴스에서도 이 같은 신조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알아듣기 힘든 사람들이 많은 말이 외국인들에겐 오죽할까요. 결국 이는 한국문화가 해외로 나가는 데 장애물이 될 겁니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로 해외에서는 한글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글을 배우고 있거나 배우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죠. 자랑스러운 한글의 원조가 우리라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더 생명력 있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송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하경헌 스포츠경향 엔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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