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지보다 소명의식이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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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엽의 눈]권력의지보다 소명의식이 더 중요

12월 대선을 향한 후보들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박근혜 후보에 이어 문재인 후보, 그리고 안철수 후보의 3자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 대해 언론은 유독 ‘권력의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정치인이라면 권력의지가 충만해야 할 텐데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권력의지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식이다.

문재인 후보는 스스로 정치를 외면했으나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조건이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깊고 길게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인과는 다르다. 두 분 다 본인 의지가 아니라 일종의 떠밀려 나오는 식이 아니냐는 단순논리로 보면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이 그럴 듯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권력의지가 대통령의 필수덕목인가라는 생각에 이르면 “권력의지는 권력욕이기 때문에 자신은 권력의지가 아니라 소명의식으로 정치적 과업을 맡는다”는 문재인 후보의 답변이 떠오른다. 그러나 언론은 여전히 다시 묻는다. “소명의식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라고. 따져볼 일이다.

소명의식은 의미 그대로 신의 부름에 따르는 것이다. 사람의 질서로 말하자면 역사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다. 역사의 신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는 일은 ’대의를 향한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미 그것은 역사에 대한 능동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지가 욕망의 윤리요 개인의 속성이라면, 대의를 향한 열정은 그보다 훨씬 더 공공적 헌신이다. 이 점에서 역사와 국민을 끌어안는 대통령의 자질로는 권력의지보다는 대의를 향한 열정에 기초한 소명의식이 윗자리에 있다.

문제는 소명의식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두 가지 윤리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드는데 이것이야말로 정치인이 동시에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했다. 신념의 윤리는 자기신념의 실현 자체에만 집착함으로써 신념 실현의 결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행위의 원리를 말하고, 책임윤리는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베버의 논리에 따르자면, 신념윤리는 권력의지나 욕망의 윤리와 결부되는데, 대의를 추구하는 뜨거운 열정 또한 신념윤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베버는 무릇 정치인은 신념윤리의 차원을 넘어 책임윤리의 자질을 갖추어야 하고, 두 가지 윤리의 원칙을 함께 갖춘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진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 언론들이 대선국면에서 유달리 강조하는 ‘권력의지’는 개인의 욕망추구 원리가 아니라 ‘대의를 향한 열망’이라는 공적 가치추구로 평가되어야 하며, 이러한 공적 열망이 소명의식을 만드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소명의식에 내재된 책임윤리는 정치인이 현대국가의 핵심 수단인 합법적 폭력을 손에 넣는다는 점에서 강조되는 윤리이다. 어떤 폭력이든 ‘악마적 속성’을 갖는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이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악마와 손잡는 것이다. 우리는 권력의지로만 뭉쳐진 정치군인들이 휘두르는 악마적 국가폭력의 역사를 겪었다. 책임윤리 없는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가의 비극이요 공동체의 눈물을 준비하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자질로는 권력의지보다는 공동체의 대의를 향한 열정이 중요하고, 그러한 열정이 책임의 윤리에 뿌리를 둘 때 바로 ‘소명의식’이 성립된다. 권력의지로 뭉친 대통령이 아니라 소명의식에 충만한 대통령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 되고 싶다.

조대엽<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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