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왜 왕비를 곰으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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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제목 메리다와 마법의 숲 

원제 Brave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마크 앤드류스, 브렌다 채프먼 

목소리연기 캘리 맥도날드, 엠마 톰슨, 빌리 코놀리 

미국개봉 2012년 6월 22일 

한국개봉 2012년 9월 27일 

등급 전체관람가

그러니까 ‘이것은 오래 전 이야기다’(A long, long time ago…)라고 시작하는 게 전형적인 월트디즈니 식이다. 월트디즈니와 합작하고 있지만 픽사의 선택은 달랐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이야기는 이렇다. 때는 10세기 중반쯤, 무대는 스코틀랜드다. 한 어린 소녀가 있었다. 생일 선물로 활을 받았다. 숲속에서 소녀는 괴물 곰의 공격을 받는다. 가족이 위험하다.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곰에 맞서 싸웠다. 소녀는 공주였다. 아버지는 왕이었다. 꽤 세월이 흘렀다. 소녀는 활을 잘 쏜다. 왕비인 엄마는 선머슴 같은 딸이 못마땅하다.

“공주는 모름지기…” 하며 사사건건 예법을 가르치려 하다 딸과 충돌한다. 딸도 그런 엄마가 싫다. 모녀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여전히 호탕하다. ‘괴물 곰’ 사건 때 아버지는 다리 한쪽을 잃고 의족을 했다. 곰에 대한 복수가 평생의 목표가 됐다. 딸을 시집보내려고 자신이 젊었을 때 동맹을 맺은 이웃 부족들을 불러들인다. 딸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왕비는 ‘여자라면 당연히’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딸은 숲속에 나갔다가 도깨비불의 인도를 받고 마녀를 만난다. 딸은 자신의 엄마가 ‘변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빈다. 마녀는 소원을 들어준다. 딸이 원한 것은 왕비가 입장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녀는 왕비를 곰으로 변하게 한다. 아버지인 왕은 왕비가 변한 곰이 자신의 부인인 줄도 모르고 동맹부족들과 함께 사냥하려고 한다. 딸은 다시 마녀를 찾지만, 마녀는 이미 사라진 뒤다.

사실 이야기의 뼈대는 전형적인 요정 이야기다. 왕과 왕비, 공주가 나오고. 마녀가 끼어들어 사건을 만든다. 위기에 빠진 공주를 구하기 위한 왕자가 나타나고, 어려운 난관을 뚫고 임무 완수에 성공한 왕자는 공주를 얻는다.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전형이다. 그런데 <메리다…>는 다르다. 얼개만 차용했을 뿐, 내용은 보다 어두운 판타지다. 아아, 그렇다고 길레르모 델 토로의 영화처럼 암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판타지 중에 비슷한 분위기를 꼽는다면 팀 버튼의 영화들과 비슷하다. 이 영화 초기에 감독을 맡았던 브렌다 채프먼은 “(이 영화는) 보다 안데르센과 그림 형제의 전통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버전의 신데렐라나 빨간모자 이야기, 아기돼지 삼형제 등 이야기의 원래 버전은 보다 하드코어에 가깝다. 저주를 받은 신데렐라의 계모나 언니들은 뜨겁게 달궈진 철제 신발을 신고 껑충껑충 춤을 추다 죽어야 했다.

‘픽사가 만든 요정 이야기’의 기술적 성취, 이를테면 한 올 한 올 중력에 따라 움직이는 곱슬머리를 3D 애니메이션으로 최초로 묘사했다든가 하는 이야기 말고도 영화는 생각할 만한 부분이 많다. 마녀는 엄마에게 걸린 주술을 푸는 주문을 이렇게 말한다. “mend the bond torn by pride.” 대충 의역해보면 “자존심 때문에 찢긴 결속을 다시 묶어내라” 정도일 텐데, 사실 어떤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담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주인공 소녀 메리다는 자신의 어머니, 공주가 만들고 있던 퀼트에서 자신과 어머니 사이를 칼로 찢어냈던 것을 상기하며, 그것을 실로 이으면 다시 곰이 된 엄마가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 해석은 틀렸다. 재미있는 것은 마녀에게 “엄마를 변하게 해주세요”라고 했던 과정과 주문을 풀어내는 과정의 대칭성이다. 

시카고 선 타임스의 로저 이버릿은 이 영화가 엄마와 딸 사이의 ‘소통’ 문제를 다뤘다고 봤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영화는 다시 소통에서 ‘언어의 불완전성’ 문제를 포착하고 있다. 좀 더 생각해야 할 캐릭터는 전형적인 마초에다 눈으로 결과를 봐야지만 그제서야 일어난 사태를 깨닫는 메리다의 아버지, 왕의 문제다. 마녀는 왜 부인을 하필이면, 왕에겐 한편으론 허풍 섞인 영웅담의 악당이자 내면적으로는 평생의 원한이자 공포의 대상인 곰으로 만들었을까. 여러 모로 생각할 게 많은 영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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