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가족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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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씨네마(주)

판씨네마(주)

제목 대학살의 신

감독 로만 폴란스키 

제작연도 2011년 

원작 야스미나 레자의 연극 ‘대학살의 신’ 

출연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레일리 

러닝타임 80분 

개봉 2012년 8월 16일

해외 광고로 기억한다. 바다 한가운데 요트 안, 남자는 노트북으로 주식 거래에 열중한다. 결국 뿔난 여자가 노트북을 빼앗아 바다로 던져버린다. 휴가지에서는 정말로 휴가를 즐기자, 이런 정도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 광고를 본 여성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걸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신작 <대학살의 신>을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끝없이 걸려오는 변호사 앨런(크리스토프 왈츠 분)의 휴대폰을 부인 낸시(케이트 윈슬렛 분)는 화병에 빠뜨린다. 술김일 수도 있다. 줄곧 적대적이었던 상대방의 부인 페넬로피(조디 포스터 분)는 통쾌하게 웃으며 낸시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앨런은 휴대폰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며 좌절한다. (그 기분, 이해한다) 페넬로피의 남편 마이클(존 C 레일리 분)은 재빨리 드라이어로 그 휴대폰을 꺼내 말리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에 작은 반전이 있지만, 그건 영화적 재미를 위해 생략.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11살, 초등학교 친구이던 이턴과 재커리가 학교 앞 공원 농구장에서 쌈박질을 했다. 재커리가 나무막대기로 이턴을 때렸다. 이가 두 대 나갔고 신경을 조금 다쳤다. 재커리의 부모가 이 일을 사과하기 위해 이턴의 부모를 방문한 참이다. 몇 년 전 유행어처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우리 아이가 너무 했어요, 아니에요, 이렇게 또 와주셔서… 하고 끝날 사안이지만, 아아, 커피 대접을 깜박했네, 잠깐 전화 좀 받고요 하는 식으로 그 자리는 끊어질 듯하면서 이어진다. 말 한마디가 꼬투리가 되고, 집안일을 신경쓰지 않는 남편에 대한 공격이 다시 남편 사이의 연대로 이어지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학살극에 대한 입장차로 이야기는 계속되는 소동극이다. 아이들 싸움이 부모들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의 90%는 페넬로피와 마이클의 맨션 집안 거실이다. 두 가족의 자녀는 이야기 바깥에 있고 실제로는 이들 부모와 함께 나오지 않는데,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에서 브루클린 공원을 비추면서 거기서 벌어진 싸움과 나중의 화해를 보여준다.

영화는 야스미나 레자가 만든 연극 ‘대학살의 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배경은 프랑스인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옮기면서 배경을 뉴욕으로 바꿨다. 기본 이야기 골격이 간단하다보니 번안하기도 쉽다. 한국에서도 연극으로 성황리에 공연되었는데, 아마 한국적 상황에 맞춰 내용 번안이 이뤄졌을 듯싶다. 연극이나 영화의 진짜 묘미는 각각 다 다른 캐릭터들이 치고받으면서 속물근성이 드러나는 과정을 재치있게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페넬로피는 아프리카 다르푸스 학살에 대해 책을 쓴 저자이며,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업가인 남편 마이클은 자신의 아내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기업 제약회사의 변호사인 앨런과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그의 부인 낸시는 페넬로피-마이클 부부와는 또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공적인 혹은 보편적인 관심과 사적 영역에서 성별 역할 분담이 어느 수준에서 이뤄져야 하는지 등에 대해 사실상 이들은 4인4색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일시적인 동맹, 합종연횡이 이뤄졌다가 다시 아이문제로 돌아가 엎어지는 등의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유머의 섬세한 결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사실 이런 식의 말꼬리 잡는 ‘속물유머’,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우디 알렌 감독이다. 우디 알렌 감독의 최근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런 이전의 색깔이 가장 많이 빠진 영화로 평가되는데,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개봉한 우디 알렌 감독 작품 중에서는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걸로 안다. 폴란스키 감독이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만든 ‘대학살의 신’의 결과는 과연 어떨지. 잘 모르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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