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으로 살아남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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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목 다크 나이트 라이즈

원제 The Dark Knight Rises

감독 크로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조셉 고든 래빗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65분 

개봉일 2012년 7월 19일 

<다크 나이트>는 사회 정의와 공익의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사실에는 동전의 양면보다 더 많은 수의 결이 있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공평한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 한 남자는 스스로 정의로웠다. 그의 정의는 공공의 선을 지향했다. 그는 밤마다 검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자신에게 허락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며 공익을 실현해 왔다. 막무가내로 법을 초월해 행동한 건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사회안전망 안에 일종의 편법처럼 끼어들어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했다. 그가 범죄자를 잡으면, 짐 고든이 체포했고, 하비 덴트가 기소했다. 한동안 이 시스템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일시적인 공조는 지속될 수 없었다. 그의 정의가 궁극적으로 실현되려면, 애초에 그 자신이 ‘영웅’으로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하비 덴트의 말은 그리스 비극의 신탁과도 같았다. “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으로 살아남든가.” 예언은 이루어졌다. 남자는 영웅이길 포기하고 자경단으로 전락했다. 공공의 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죽은 하비 덴트는 영웅이 되어 희망의 상징이 되고 살아남은 남자는 악행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유폐되어야만 했다. 그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개에게 쫓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신화다.

이를테면 <다크 나이트>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과 같은 이야기였다. 이 어두운 이야기는 선한 세력의 추락을 다루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 문법 안에서 보나마나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문제는 시리즈를 닫는 가장 근사한 형태의 모범답안이되, 독립된 개별 작품으로서의 개성과 만듦새, 이슈의 두께는 상대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베인을 보라. 이 영화 속에서 베인은 조커에 뒤지지 않는 멋진 캐릭터였다. 코믹스의 베인보다 열 배는 매력적이다. 배트맨을 없애고 갱단을 굴복시키고 결국 자신이 고담을 지배하려고 했던 코믹스의 베인에 비해 영화 속 베인에게는 거대한 계획과 신념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었을 때 중반부까지의 베인과 후반부의 베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 베인을 둘러싼 갈등의 밀도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모사해가며(앙시앵 레짐-하비 덴트 특별법, 바스티유 감옥 습격-블랙게이트 수용소 습격, 파리시청-고담시청) 거창하게 실행된 도시 점령은 별다른 논리도 당위도 신념의 뼈대도 없이 오직 앙상한 거짓말로서만 기능한다. 월가 점령의 잔상 위에서 신념에의 대결로 읽혀지리라 예상되었던 이야기는 낡고 투박한 육탄전으로 대체되었고, 혁명가로서의 베인 또한 연애감정에 휘둘린 ‘남성’으로 종말을 맞는다.

이는 사실상 라스 알굴 때문이다. <배트맨 비긴스>의 라스 알굴과 ‘어둠의 사도들’은 삼류 음모론에 빠진 중학교 2학년 일기장 수준의 대의를 가진 악당들이었다. 시리즈의 마무리를 위해 그들이 돌아와야만 했고, 이야기의 고민도 그와 함께 하향 평준화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를 닫는 완결편으로서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이 시리즈는 공동체를 향한 염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 전반이 공유하는 신념을 매우 강조한다. 시리즈 매회의 갈등은 그 신념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발생했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우리는 웨인 부부의 죽음, 하비 덴트의 우상화된 죽음과 같은 것들이 신념의 재료가 되어 지탱되어온 이 공동체를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봐 왔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하비 덴트라는 이름의 신탁의 예언은 망령처럼 꿈틀대며 배트맨 신화의 마지막까지 끌어안는다. “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으로 살아남든가.” 브루스 웨인은 삶을 잃고 다크 나이트는 삶을 얻었다. 공동체는 건재할 것이다. 이 얼마나 완전한 결말인가.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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