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종합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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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제목 무서운 이야기

감독 정범식, 임대웅, 홍지영, 김곡&김신, 민규동

출연 김현수, 노강민, 이동규, 진태현, 최윤영, 정은채, 남보라, 나영희, 김지영, 김예원

제작사 수필름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등급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08분

개봉일 2012년 7월 26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 나타났다고 치자. 머리는 산발하고, 얼굴은 피투성이를 한 여인이다. 그런데 ‘출몰’하는 것 이외에 어떤 위해도 가하지는 못한다. 깜짝 놀라게 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왜 무서워해야 하는가. 빈말이 아니다. CG기술의 발달은 영화에 막 처음 도입되었던 1970년대 말, 80년대 수준이 아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건 거의 힘들어졌다. 아직은 초기 단계인 홀로그램 기술도 안개와 같은 매개체만 있다면 공중에 환영을 띄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어쩌면 이런 기술이 보편화될 가까운 미래의 어느날 밤,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기회일 ‘진짜’ 귀신을 목격하고도 무심히 지나치게 될지도 모른다. 옴니버스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서 했던 생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단편 <공포비행기>를 보면서 떠오른 잡념이다.

한 스튜어디스가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돼 살해됐다. 연쇄살인마는 특별편성 여객기로 서울에 압송된다. 이 연쇄살인마는 믿기지 않는 솜씨로 연행하던 형사들을 제압하고 스튜어디스와 비행기 기장을 차례로 죽인다. 그런데 때때로 자신이 이전에 죽였던 스튜어디스의 귀신이 출몰한다. 하지만 이 귀신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잡생각이 파고들 여지가 생긴 것은 실은 영화의 설정 자체가 이해가 안 돼서다. 연쇄살인마 호송을 위해 텅 빈 여객기를 운항한다는 것도 납득이 안 된다. 

조종실(콕핏)의 문은 이 천하무적 살인마가 몇 차례 몸으로 부딪히자 가설주택의 문처럼 부서지고 만다. 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평했다.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폐쇄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인 것 같다고. 반만 맞는 말이다. 공간, 즉 세트의 절약은 제작비와 직결된다. 이야기는 비행기 세트 내에서 시작해서 거기서 끝난다. 마지막 편인 <앰뷸런스>도 마찬가지다. 좀비 스토리라고 하지만 이야기의 주무대는 환자 긴급 후송차량 안이다. 게다가 ‘심야’의 도로 위라는 설정은 좀비 분장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고전의 현대판 재해석이라고 말하는 <콩쥐, 팥쥐>의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다. <요재지이> 같은 고전 괴기담을 읽다보면, “아이를 깨물어먹고 싶을 만큼 귀여워요”라고 말하던 새 부인이 알고보니 여우였고, 정말로 아이들을 머리카락만 남기고 다 뜯어먹고 갔더라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여럿 실려 있다.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민 회장은 공지의 피부를 핥으며 “석류 같은 맛이 난다. 맛있겠다”고 말한다. 박지의 엄마는 “대신 수박 같은 맛이 나는 박지를 먹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노골적인 표현은 역설적으로 감독이 여성(홍지영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처음부터 이게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본다. 민 회장이 즐기는 ‘육젓’이 단순히 동물고기로 만든 젓갈이 아니라는 것도.

아쉬웠다. 극을 이끌어가는 긴장감이나 연출의 완성도, 특수효과 모두 무난했다. 그런데 공포영화 장르에서 새로운 성취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앰뷸런스>가 천착하는 ‘신뢰’의 붕괴 문제는 아쉽게도,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좀비 장르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익숙한 주제다.

그래서 이 옴니버스 영화의 맨 앞에 실려 있는 <해와 달>이 돋보인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지하실 구석에서 여성의 귀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이미 구로자와 기요시가 한 번 써먹은 설정이지만 나름대로 괜찮다. 여기에 에필로그처럼 덧붙여 있는 ‘시선의 전환’은 인상적이다. 감독은 영화가 담고 있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한 차례 완화시키기 위해서 ‘해와 달’ 자매 대신 중학생을 출연시킨다. <해와 달>은 <기담>(2007)의 정범식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다. <기담>에서 고주연이 목격하는 귀신 시퀀스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인기있는 동영상인데, <해와 달>의 아역배우 김현수는 고주연을 빼닮았다. 연출과 이야기 구성에서 편차는 존재하지만, 어쨌든 <무서운 이야기>에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은 꽤 된다.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나온 것이 반가울 따름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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