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근의 미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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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엽의 눈]문성근의 미시정치

요즘 대학에는 교수들이 강의법 개발에 몰두하는 새로운 풍경이 눈에 띈다. 시청각자료를 활용하는 방식부터 인터넷을 통한 즉석 화상교신으로 수업의 효과를 높이는 방식까지 다양하게 개발되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강의방식이 학생들에게 문화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에 효율적이라는 데 일견 동의할 수 있지만, 이것이 좋거나 높은 수준의 교수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교수와 학생을 잇는 장치일 수 있지만 오히려 마음을 담은 직접 소통에는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가장 수준 높은 강의는 가장 고전적 교수법인 ‘대화’의 방식일 수 있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의 ‘말씀’은 우주와 자연, 인간과 치세의 이치를 담았기에 인류의 바이블이 되었지만 이들의 사상이 전달되는 방식은 제자들과의 대화이다. 나는 이 같은 대화가 오늘날과 같은 미디어의 시대에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장치가 범람하는 오늘날, 미디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직접 대화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귀한 소통방식이 되었다. 대화가 귀한 것은 사람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현장성 때문이다. 이 현장성 속에서 교수와 학생은 눈빛과 태도의 교환을 통해 느낌을 소통한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모두 스크린만 바라보거나 다른 매체가 끼어들어서는 정서와 느낌을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현장성을 경험하기 어렵다.  

총선 이후 야권의 패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대행의 행보가 신선하다. 문 대행은 벌써 몇 차례에 걸쳐 여의도공원에 나가 직장인들과 대화하는가 하면 방송파업 현장을 찾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시장통에서 떡볶이나 순대를 먹어보는 것이 이른바 민생탐방이었고, 그것은 늘 일회성의 과시형 정치에 그친 데 비해 문대행이 시도하는 시민과의 대화는 이와 구별되는 현장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총선이 끝난 후 시민들을 직접 찾아 참여를 호소하고 민주당의 미래를 제안해달라고 외치는 현장에는 절박함이 있고, 그 절박함에는 ‘진정’(眞情)이 담겨 있다. 또 시민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건네는 것은 시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것이고, 여기에는 이름 없는 시민에 대한 ‘인정’(認定)의 의미가 배어 있다. 제도정치권은 인정받고 싶은 시민의 욕구를 언제나 배반했다. 대의민주주의의 구조가 그렇고 개별 정치인들의 처신 또한 그러했다. 문 대행의 현장정치는 진정과 인정의 정서가 교류하는 현장성이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진정과 인정의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진정의 정치와 인정의 정치를 시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갖추지 못한다면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실패하기 쉽다. 

나는 진정과 인정을 전하는 방식을 ‘다정’(多情)의 정치라고 부르고 싶은데, 문 대행의 현장정치에 이 다정의 정치가 보태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청년의 고통과 서민의 박탈은 투쟁의 언어로 달래지지 않는다. 설득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로 시민의 마음을 다정하게 안아야만 진정성의 체온이 전달될 수 있고, 억지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공감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킬 수 있다. 소셜 미디어가 새로운 통로를 열고 있지만 현장정치의 체온을 담기에는 제한적이다. 여전히 정당과 시민의 거리가 너무 멀다. 정치의 체온을 전하고 시민의 마음에 다가가는 미시정치의 한 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현장정치에 주목할 때이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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