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포착된 딜레마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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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테크

㈜시공테크

제목: 오래된 인력거

감독: 이성규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 2011년 12월 15일

상영시간: 85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독수리가 노려보는 가운데 굶주림에 지쳐 쪼그려 앉은 소녀. 종군기자 케빈 카터가 1993년에 아프리카 수단에서 찍은 사진이다. 1994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은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아사(餓死) 직전의 소녀를 돕지 못한 사진작가는 자책감에 못 이겨 자살을 선택했다는 설명과 함께. 먼저 정정해야 할 것은 케빈 카터가 ‘작품’에 대한 집착으로 소녀의 죽음을 외면했다는 속설이다. 피사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케빈 카터가 남긴 유서에 더 많이 적혀 있는 말은 자신의 궁핍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 사진과 케빈 카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자료가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길. 다큐멘터리 영화 <오래된 인력거>를 보면서 계속 곱씹었던 게 케빈 카터의 그 사진과 관련한 논란이다.

샬림은 인도 캘커타의 인력거꾼이다. 영화는 카메라에 역정을 내며 눈물을 흘리는 샬림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샬림은 말한다. “모든 외국인들은 다 친구라고 해. 당신도 마찬가지인데, 오직 여기에 있을 때만 친구일 뿐이야.” 사실, 곰곰이 생각했다. 감독이 이 영화를 찍은 의도는 도대체 뭘까. 카메라는 집요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샬림의 일상을 추적한다. 맨발로 인력거를 끄는 이유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My Barefoot Friend’다. 번역하자면 ‘맨발의 내 친구’다. 관광객이나 학교에 등·하교하는 아이들, 짐을 나르는 음식점 주인 등이 주요 고객이다. 특히 캘거타는 고(故) 테레사 수녀의 삶에 감동받아 자원봉사를 온 외국인들 특수가 있는 도시다. 샬림은 “항상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동시에 그 ‘뛴다’는 것은 탈출이다. 가난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인력거는 단순한 노동에 기초한 교통수단이다. 자본도 기술도 없이 도시로 들어온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계수단이다. 인력거는 보통 임대상인이 따로 있다. 인력거를 몰다가 바퀴라도 고장나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젊은 ‘마노즈’는 번번이 실수를 한다. 감독은 자신이 10여년 전 찍은 분쟁 현장 속에 등장하는 꼬마가 나중에 자라 그 인력거 청년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분쟁 현장에서 꼬마의 아버지는 타살당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청년이 돼 가족 부양을 위해 인력거꾼으로 나섰다. 요컨대 가난은 천형이다. 여간해서 탈출하기 힘든 굴레다.

샬림은 그래도 뛴다. 포기하지 않고 뛴다. 유일한 희망은 돈을 모아 1200만원쯤 하는 삼륜차를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향에 남기고 온 아내와 아이가 발목을 잡는다.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아내와 신종플루에 걸린 아이의 약값에 그는 좌절한다. 모아놓은 돈은 빠르게 줄어든다. 돈을 보며 한탄의 눈물을 흘리던 샬림은 ‘외국인 친구’의 카메라에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리고 처음의 장면이다. 냉정을 유지하던 카메라가 흔들린다. 프레임 안으로 감독이 뛰어들어간다. 감독은 샬림을 쫓아가 껴안고 말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떠오른 것은 카터의 사진이다. 어쨌든 딜레마의 순간은 기록으로 남았다. 어리석은 우리는 가장 동정심을 자극할 수 있는 사진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 사진기자가 그 후 먹잇감을 노리던 독수리를 쫓아냈는지, 사진 속 소녀는 아사로부터 탈출했는지를 궁금해 한다.

영화의 엔딩. 자막에는 다음과 같은 ‘후일담’이 적혀 있다. ‘인력거는 빈곤의 상징이면서 비인간적인 교통수단이라는 비난으로 캘거타에서 곧 사라질 운명이다.’ 우리는, 역시 어리석게도 이런 걸 궁금해 한다. 샬림은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을 여전히 자신의 ‘친구’로 여기고 있을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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