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의 사상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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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인준은 표류 중이다. 지난 6월 말 인사청문회 때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를 두고 “정부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확신을 할 수 있는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조 후보자는 정부 발표를 확신하지 못할 뿐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일부 의원들은 ‘확신’을 강요했다. 이후 빨갱이 소리도 나오며 ‘조용환 파동’은 이념문제로 비화됐다.
공인노무사 면접 자리에 청문회 의원님 못지않은 면접관님이 나오셨다.

“면접관이 천안함 사태에 대한 견해를 말해보라더니 ‘당신의 국가관이 뭐냐’고 물었다”며 “‘굉장히 민감한 질문인데,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저는 의혹이 아직 있다’고 답하자 면접관은 ‘내가 이 질문을 한 의도는 공인노무사를 뽑을 때 국가에 해가 되는 사람을 뽑지 않기 위함인데, 정부 발표를 못 믿겠다는 거냐’고 하더라”고 말했다.(한겨레 2011년 11월 3일자, 공인노무사 뽑는데 웬 ‘사상검증 면접’?)

촛불집회와 천안함 사건은 사상검증 논란이 된 면접장의 주요 질문 재료다. 사진은 2008년 6월 10일 촛불집회에 운집한 촛불 행렬. /강윤중 기자

촛불집회와 천안함 사건은 사상검증 논란이 된 면접장의 주요 질문 재료다. 사진은 2008년 6월 10일 촛불집회에 운집한 촛불 행렬. /강윤중 기자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발표 장면. /김정근 기자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발표 장면. /김정근 기자

이 면접장에서는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촛불의 배후세력을 색출하려던 것이었을까. 2009년 시험 땐 “이명박 정부가 세 가지 국정기조로 삼는 것이 있는데, 따뜻한 사회가 무엇인가”도 질문이었다.

시험을 주관한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감독관청인 고용노동부는 “국가 인정 공인자격증 시험에서 국가관을 확인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 국가 정체성을 바로세우겠다는 정권의 관청답다.

면접장의 시대착오적 사상 검증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면접으로 치러지는 사법시험 3차시험과 사법연수원 수료자를 대상으로 한 임용 면접장에서도 벌어졌다. 사법연수원은 좌파정권 소리를 듣던 노무현 정권 때 국가 정체성 수호의 보루였던 셈이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 선고 후 사면복권된 사법연수원 수료생이 법관 임용을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

지난달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봉재씨(33)는 25일 “우수한 성적(976명 중 73등)으로 졸업했지만 국보법 위반 전력 때문에 예비판사 임용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면접에서 과거에 사회주의를 표방했느냐, 지금도 그때 친구들을 만나느냐, 국가보안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며 “판결받은 대로 ‘사회주의를 신봉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국보법은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04년 2월 26일자, ‘운동권 前歷’ 판사임용 탈락 또 논란, ‘보안법’ 지울 수 없는 낙인?)

이씨는 이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면접장이 국보법 재판정 같았다”고 했다.
2006년엔 운동권 전력이 없어도 ‘사상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응시생들을 검증하는 일도 있었다.

그가 “형법은 최후의 방법으로 보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자, 다른 면접관이 “그럼 자네는 국보법 폐지에 찬성하겠구먼”이라고 반문했다고 밝혔다. (중략) “그럼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는 물음이 돌아왔고 순간 잘못 걸렸다는 생각에 “북한”이라고 대답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경향신문 2006년 11월 28일자, “주적 누구냐” “금강산관광 계속 해야 하나” 사시 면접 ‘사상검증’ 논란)

민주화 시위 전력 때문에 사법시험 면접에서 떨어진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등이 49회 사법시험 합격증서를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민주화 시위 전력 때문에 사법시험 면접에서 떨어진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등이 49회 사법시험 합격증서를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해 사법시험 3차시험(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응시생들에게 북핵, 국가보안법 존폐, 금강산관광 존속 여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질문했다. 소신 발언을 한 일부 응시생을 심층면접 대상자로 분류했다. “주적은 미국이다”라고 답한 응시생은 이후 심층면접에서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입장을 바꿔 구제됐다. 다른 수험생은 심층면접장에서도 “북핵은 우리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소신을 지켰는데, 면접관들의 토론 끝에 합격했다. 하지만 참여연대 박근용 사법개혁센터팀장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관련된 질문은 피면접자에게 압박감을 주고 양심에 반하는 답을 강요할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사상검증장이 된 사법시험 면접장 보도 직후 공무원 면접시험의 문제를 이어 보도했다. 직무 연관 질문을 빼고 가장 많이 나온 것은 ‘합격 이후 공무원 노조 가입 여부’나 ‘공무원 노조의 불법시위 처벌’ 등이었다. 개인 양심문제를 침해하고, 자기 검열케 하는 사상검증이란 지적이 나왔다.

2008년 6월 기업 면접장에서는 촛불집회 관련 질문이 단골로 등장했다. 기업들은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도와 논리력을 알아보려는 질문일 뿐 찬반 입장이 당락을 가르지 않는다”고 했지만, 수험생들은 어떻게 답변할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2008년 1월까지만 해도 시대가 완전히 거꾸로 흐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법무부가 1981~82년 사시 23·24회 1·2차시험에 합격하고도 민주화 운동 전력 때문에 최종 면접에서 낙방한 10명에게 27년 만에 최종면접 시험을 다시 보게 한 것. 낙방자들은 당시 면접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안기부가 면접관들에게 시위 전력자들을 모두 불합격시킬 것을 요구했기 때문.

장도리 만평

장도리 만평

최근 공인노무사의 사상검증 면접은 안기부의 DNA가 면면히 이어지다 되살아난 때문인 것 같다. 경향신문의 비판 사설이다.

공인노무사법 시행령도 ‘주요 평정사항’에 국가관을 묻도록 명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헌법 19조에 있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국민은 누구나 개인의 판단이나 확신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않고,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아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그런데 면접관의 질문은 헌법 정신을 훼손함은 물론 최소한의 국가관 검증 수준도 넘어섰다.

그런데, 이 면접장(경향신문 2010년 10월 8일자 장도리)의 풍경은? 한국 사회에서 이 면제검증은 사상검증과는 동전의 양면이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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