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부를 남에 게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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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낮 서울 충정로 한국구세군본부에 90대 노부부가 찾아왔다. 사무실에 있던 구세군 사관은 노부부를 금세 알아봤다. 2년 전 이맘 때 부부가 찾아와 5000만원짜리 수표 2장을 자선냄비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평안도 신의주와 정주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란와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부부는 당시 “어려운 북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년 만에 다시 구세군에 온 부부는 이번에는 1억원짜리 수표 2장을 자선냄비에 넣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르게 해달라”고 당부하더니 “진짜로 오늘 밤은 다리를 쭉 펴고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경향신문 2011년 12월 21일자, 90대 노부부, 구세군에 2억 기부)
 
이들 노부부는 그간 구세군에 모두 3억원의 후원금을 냈다. 1928년 자선냄비가 생긴 이래 개인이 기부한 금액 중 최고 액수라고 한다. 한편 지난 4일 서울 명동 우리은행 앞 자선냄비에는 한 노신사가 1억1000만원짜리 수표를 넣고 갔다. 거리 모금으로는 사상 최고 금액이다.

기부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위해 돈을 내놓는 행위다. 기업인도 정치인도 이런 저런 이유로 기부하고, 널리 알린다. 기부가 ‘경제적·정치적 교환행위’로 비칠 때도 있다. ‘순수한 기부’는 그 이름을 걷어낸 ‘익명기부’다. 해마다 익명기부가 화제가 됐다.

지난 12월 1일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이 시작된 날 서울 명동을 지나는 한 시민이 냄비에 돈을 넣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12월 1일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이 시작된 날 서울 명동을 지나는 한 시민이 냄비에 돈을 넣고 있다. /김창길 기자

2000년 7월엔 익명의 재미사업가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 6억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당시 개인의 시민단체 기부액 중 최고액이었다. 해마다 수억, 수십억원 규모의 익명기부들이 이어졌다.

익명의 노부부가 “암 조기진단과 치료에 써달라"며 서울대병원에 거액의 연구기금을 기탁했다. 서울대병원은 17일 서울에 사는 70대 부부가 "폐암과 위암의 조기진단 및 치료를 위한 연구기금으로 써달라"면서 50여년간 돈을 모아 투자한 삼성전자 주식(시가 80억원 상당)을 전달해왔다고 밝혔다.(경향신문 2004년 12월 18일자, ‘이름 감춘’ 80억 아름다운 기부 - 노부부, 서울대병원에 “암 연구에 써달라”)

이 부부가 거액 기부를 하게 된 것은 이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암을 조기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부 사실을 외부에 절대로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가 병원측의 설득으로 익명 보도를 허락했다고 한다.

얼굴 없는 독지가가 30억원의 거액을 KBS에 기탁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9일 낮 12시, 20대의 남자형제 2명이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제작진을 찾아왔다. 평범한 용모의 두 사람은 “아버지가 시킨대로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뿐”이라며 흰봉투를 건네고 돌아갔다. 봉투에는 7억6000만원과 12억4000만원의 수표 2장이 들어 있었다.(경향신문 2006년 1월 12일자, ‘얼굴 없는 천사’ 30억 기탁 - KBS ‘사랑의…’ 제작진에 익명으로 전달)

이들이 건 조건이 딱 하나 있었다고 한다. 방송 출연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언론이 나중에 이들을 찾았으나 끝내 얼굴 드러내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평소 아버지는 버스비를 아끼려고 운동화를 신고 걸어다녔고, 아들은 경차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2006년 경향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얼굴 없는 기부자’였다. 고액 기부부터 저금통을 깨 매년 성금을 보내는 기부들이 이어졌다. 어머니 심장병 수술비 마련을 위해 김밥을 만들던 학생에게 1000만원을 전달하고 사라진 여성도 있었다.

2007년 7월에 한 60대 여성의 딸이 어머니의 유언이라며 당시 시가 4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고려대 의료원에 기부했다. 서울 청담동 도산대로 인근 땅 3300여㎡(약 1000여평)였다고 한다. 개인 대학 기부로는 최대 수준이다.
익명기부는 전파된다. 2004년 12월 3명이 남몰래 46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쾌척했다. 언론이 보도하자, 또다른 한 명이 “선행에 감동했다”며 1000만원을 내놓았다.

이런 일도 있다. 2005년 4월 1일 전북대 정문 수위실에 60대 남성이 와 노란 봉투를 맡기고 사라졌다. 현금과 자기앞수표 5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는 “매년 3학년 학생 중 한 명을 선정,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또는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해달라”는 쪽지를 남겼다.

충북지회에 최근 한 부인이 찾아와 1억원을 기부했다. 충북 제천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암에 걸려 죽은 남편이 자신의 치료비로 모아놓은 돈이었다. 부인은 “남편이 임종 직전 ‘남은 치료비를 난치병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2005년 12월 22일자, 癌사망 남편 치료비 1억 난치병 어린이에….‘얼굴 없는 기부’ 세밑 데운다)

2008년 11월엔 탤런트 문근영씨가 화제가 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6년간 8억5000만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게 뒤늦게 밝혀졌다.
물품 기부도 많았다. ‘홍길동’이란 이름의 기부자도 있다.

지난 18일 새벽 경기 안산시의 사할린 귀국동포 489가구 898명이 모여 사는 ‘고향마을’에는 배추 1만 포기, 무 한 트럭 등 김장거리가 산처럼 쌓였다. ‘홍길동’이라고만 밝힌 한 익명의 천사가 올해도 인편으로 어김없이 보내왔다. 이날 양념값 300만원까지 따로 전달한 홍길동씨가 2001년부터 이곳에 전달한 정성은 모두 1억4800여만원어치.(경향신문 2002년 11월 20일자, ‘왼손 몰래’ 돕는 천사들,익명의 기부자 갈수록 늘어… 추위도 외로움도 ‘훌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업인의 익명기부 20억원을 일해재단에 출연했다는 내용을 담은 경향신문 1988년 8월 25일자 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업인의 익명기부 20억원을 일해재단에 출연했다는 내용을 담은 경향신문 1988년 8월 25일자 보도.

2008년 12월엔 30대 남성이 광주 북구청에 10㎏들이 귤 1000상자를 보냈다. 시가로 2000만원 상당이다. 소액 익명기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뜻 깊은 기부도 많았다. 2008년 마지막 날 ‘20대 백수’라고 밝힌 청년이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1만4150원을 내고 갔다. 한 해 읽은 책값의 절반이라고 했다. 기부자 이름으로 헤밍웨이·이외수 등 국내외 작가 49명이 적혀 있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익명기부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4년 일해재단 설립과 관련, 20억5000만원을 출연했는데, 이 돈을 재벌한테 받은 사실이 국회 5공비리특위에서 밝혀졌다.

‘익명기부’는 아름다운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익명기부가 없는 세상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모스는 <증여론>에서 경제적 교환행위로서의 기부행위를 탐구했다. 그는 사회 도덕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의 재산 일부를 추렴해 공제조합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제도를 제시했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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