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문화 속 익숙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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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화사 진진

(주)영화사 진진

제목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Nader and Simin, a Separation)

제작연도 2011년

러닝타임 123분

장르 드라마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

출연 레일라 하타미, 페이만 모아디, 사레 바얏, 샤하브 호세이니

개봉 2011년 10월 13일

등급 12세 관람가

제3세계 문화 대부분이 그러하듯 국내 대중들에게 이란영화 자체가 꽤나 낯선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예술영화에 어느 정도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그나마 친숙한 국가라 할 수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등을 연출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덕분인데, 이후에도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감독들의 작품들은 크고 작은 영화제와 예술영화 전용관을 통해 국내에 꾸준히 소개, 개봉되어 왔다.

1972년 이란의 중부에 위치한 이스파한에서 출생한 아스가르 파르허디 감독은 예술성과 사회의식으로 경쟁력을 키워온 이란영화의 새로운 신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네 번째 장편인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이전까지 이란영화들이 보여줬던 정적이고 사색적인 드라마를 유지하면서도 그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세련되고 치밀한 작가적 역량까지 선보인다.

학교에서 외국어를 강의하는 인텔리 여성 씨민(레일라 하타미 분)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이민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은 현실과 한참 성장하고 있는 11살 외동딸 테르메(사리나 파르하디 분)의 미래를 위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남편 나데르가 고집을 부리고, 어렵게 준비한 희망은 물거품으로 사라질 위기에 이른다. 결국 이혼법정에까지 서게 된 씨민과 나데르. 두 사람은 팽팽히 맞서고 이렇다 할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별거를 선택한다.

아내가 친정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은행원인 나데르는 회사에 있는 동안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볼 간병인으로 라지에(사레 바얏 분)라는 여인을 집에 들인다. 임신한 몸에 어린 딸까지 동반하고 먼 길을 왕래해야 하는 라지에는 신앙심이 깊은 여인. 빚쟁이에게 고소당해 수감된 남편을 대신해 어떻게든 생계를 꾸리려 간병 일을 맡았지만 아무리 치매노인이라 해도 외간남자를 수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지에가 잠시 외출한 사이 나데르의 아버지가 위험한 상황에 이르고 화가 난 나데르는 라지에를 야박하게 해고한다. 얼마 뒤 라지에의 유산소식이 전해지고, 나데르는 그 책임을 물어 고소를 당한다.

사적으로 보이는 부부의 갈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한 쌍의 부부와 연결되며 뜻밖의 갈등으로 확장된다. 이들 사이에서 심화된 갈등은 계층이나 사회의 제도적 규범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다양한 감정을 건드리는 고뇌로까지 심화된다. 모든 단계마다 새롭게 대두되는 정치·종교적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는데, 매우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물들의 은밀한 시선과 위태로운 감정은 이야기에 더 큰 생명력을 부여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닥으로 내던져버리는 치명적 ‘비극’이란 결국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에서 비롯된다는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감독은 작품을 기획하면서부터 어떤 결과나 해답을 뚜렷하게 제시하는 것이 아닌, 관객 개개인이 스스로이야기를 해석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이런 감독의 의도는 영화 속에 충분히 실현되었고, 덕분에 관객들은 마치 추리물을 보듯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독특한 드라마의 힘을 만끽할 수 있다.

뛰어난 만듦새와 영화적 매력으로 올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 남우·여우주연상을 휩쓸고 기타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몰이 중인 이 작품은 프랑스, 영국, 독일,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서 개봉해 이란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이란영화의 현재진행형을 엿볼 수 있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문화의 다양성에 지적욕구를 느끼는 관객이나 가을에 어울리는 차분한 감동과 여운을 원하는 관객 모두에게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이다.

최원균<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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