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영상에 담긴 두 남녀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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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앤 시네마 스튜디오 블루 제공

미디어 앤 시네마 스튜디오 블루 제공

제목: 푸른 소금

제작연도: 2011년

러닝타임: 120분

장르: 드라마

감독: 이현승

출연: 송강호, 신세경, 천정명

개봉: 2011년 8월 31일

등급: 15세 관람가

은퇴한 조직폭력배 두헌(송강호 분)은 어두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산 집으로 내려와 요리학원을 다닌다. 집과 학원을 오가는 것 외에는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인 그의 무료한 생활 속에 언제부턴가 학원 옆자리에서 수강을 받는 어린 세빈(신세경 분)의 존재감이 끼어든다. 냉소적이지만 나이에 비해 왠지 무거운 서글픔을 머금은 듯 보이는 세빈. 두헌은 점차 그녀에게 빠져든다.

과거 촉망받는 사격 유망주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세빈. 그녀는 빚 독촉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두헌을 미행하는 일을 하게 된다. 주변의 모든 것이 각박하고 사납기만한 그녀의 눈에는 단조로운 일상이 전부인 지루한 중년남 두헌, 하지만 종종 유머러스한 따뜻함이 엿보이는 그에게 세빈은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차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열어갈 즈음, 세빈에게 두헌을 살해하라는 난데없는 명령이 떨어지고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을 겨눌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푸른 소금>을 언급하는 데 있어 가장 대중적인 화제는 캐스팅이다. 국민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배우 송강호와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세대 배우 중 으뜸인 신세경의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모처럼 장편을 선보인 이현승 감독의 이름에 더 큰 흥미를 가질 수 있다.

근래 한국영화의 급속한 산업화는 과도하게 신인감독들을 우선시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는 여전히 심화되고 있다. 이런 경향으로 볼 때 한동안 작품활동이 없던 기성감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꽤나 고무적이고 반가운 소식이라 할 만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현승 감독은 작품 속에 차갑고 강렬한 도회적 색감을 불어넣는 데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대 안의 블루>(1992),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처럼 독특한 비주얼과 여성적 감성으로 기억되는 그의 대표작은 9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부흥에도 크게 일조했다. 특히 2000년 발표했던 <시월애>는 2006년 미국의 워너 브러더스 사가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록을 기용해 <레이크 하우스>란 제목으로 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성사된 첫 번째 한국영화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일단 감독의 전작이 보여줬던 일관된 특징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이번 작품 <푸른 소금> 역시 어느 정도는 만족할만한 여지가 크다. 적어도 이현승 감독만의 특별한 비주얼과 섬세한 감수성은 긴 시간 동안 묻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기가 넘치며 강렬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매우 현실적인 무대와 사건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을 몽환적인 판타지로까지 승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더 나아가 등장인물과 사건 사이에서 수시로 포착되는 비약이나 과장까지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개성 강한 배우들이 엮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유머 역시 이 영화를 모처럼 만에 만나는 특별한 정서의 작품으로 이끄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위태로운 듯해 보이면서도 훈훈한 교감을 이끌어내는 두 주연배우의 조합은 자칫 모호해질 수 있었던 작품의 색을 더욱 명료하게 상승시키고 있다. 또 윤여정, 오달수, 김뢰하, 천정명 등 요소요소에서 재능을 드러내는 조연배우들의 존재감 역시 의외의 잔재미를 선사한다.

전반적으로 매우 낭만적이며 여백의 서정이 미덕인 이 영화는 기나긴 장마 이후 이르게 피부에 와 닿는 가을의 서늘함에 어울리는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딱히 액션이나 스릴러, 로맨스로도 보기 모호한 장르성은 단순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요즘 대중관객들에게 다소 지루하고 어정쩡한 작품으로 평가될 여지도 없지 않다.

최원균<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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