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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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총장은 취임사에서 “이 땅에 3대 전쟁을 선포하고자 한다. 하나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고, 둘째는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이며, 마지막으로는 우리 (검찰) 내부의 적과의 전쟁”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직도 북한에 대한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이라며 “종북좌익세력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8월 13일자, 한상대 검찰총장 “종북좌익세력과 전쟁”)

명진스님은 최근 경향신문 ‘이상돈·김호기의 대화’에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의혹이 터져나온 한상대 청문회를 보고 “이명박 정권은 ‘파렴치’, ‘몰염치’, ‘후안무치’가 겹친 ‘삼치’ 정권”이라고 했다. 한 총장은 삼치 정권의 숱한 인물 중에서도 극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병역면제 의혹에 휩싸인, 총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을 사람 입에서 ‘전쟁’ 소리까지 터져나오다니.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8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뉴욕에 사는 한 후보자의 형에 대한 질문을 하자 울먹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8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뉴욕에 사는 한 후보자의 형에 대한 질문을 하자 울먹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한 총장 발언 뒤에 이명박 대통령은 ‘공생발전’을 말했다. ‘종북·좌익세력’은 공생 대상에서 뺀다 해도, 전쟁과 공생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통령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총장의 ‘오버’거나, ‘공생’ 속에 잠복한 대통령의 복심을 간파해 드러낸 것일 수도. 부정부패와 전쟁한다는데, ‘위장전입의 미망’에서 벗어나 그 부정과도 전쟁할지 두고볼 일이다.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 해방정국의 좌·우익 갈등처럼 피비린내 나게 하는 ‘좌익’이란 단어를 선택했다. ‘친북좌파’란 말은 온건하게 들릴 정도다. 이승만과 군사독재시절을 오마주하는 ‘종북·좌익’ 발언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정권에 비판적인 이들과 집단을 두고 ‘종북·좌익’ 올가미를 씌우는 것은 자칭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오래된 프레임이다.

‘종북(從北)’이란 단어는 노무현 정권 때 등장했다. 2004년부터 보수언론 지면에 노 정권의 대북정책을 두고 ‘종북반미’ ‘종북탈미’의 조어로 비판하는 구절들이 나온다. 2007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친미도 하고, 친북도 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친북이 아니라 ‘종북’을 하자는 것”이라며 이적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종북은 진보나 좌파에서 쓰는 말이기도 했다. 2007년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은 자주파(NL)와 평등파(PD) 간에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일심회 사건과 북핵실험을 두고 벌인 논쟁이었다. 2010년 3대세습 때도 종북 논쟁은 이어졌다. 한상대 총장의 ‘종북’과 평등파의 ‘종북’은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일까. 다음은 2007년 4·29 재·보선 때 경향신문 기사다.

박희태 대표는 “좌파들은 경제 건설이 아니라 이념·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투사이며 싸움꾼”이라면서 “이제 좌파 아류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울산 북구의 경제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중략)정몽준 최고위원도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는 스스로 종북주의자가 된 것인지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고 공격했다.(경향신문 2009년 4월 28일자, 희한한 재·보선 막판 표몰이)

민주노동당에서 종북주의 문제를 제기하며 선도 탈당한 평등파 조승수 의원도 후보 단일화를 했다는 이유로 ‘종북주의자’로 몰렸다. 종북좌익세력은 우선 ‘반한나라당’, ‘반MB’로 좁혀진다. 한나라당과 한 총장과 같은 어법을 구사하는 이들의 말을 살펴보면 종북좌익세력은 더 자세히 나온다.

현충일인 6월 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6·6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종북세 력 척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현충일인 6월 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6·6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종북세 력 척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뉴라이트 전국연합,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100여개 보수 시민단체들이 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시민사회단체 신년인사회’를 열었다. (중략) 조갑제 전 대표는 “올해 애국단체는 MBC, 전교조, 민주노동당, 초법적 위원회, 한국진보연대 등 5개 조직을 집중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전 국방장관은 “정보기관 판단에 따르면 올 3~4월께 종북 좌익세력들이 제2의 촛불시위를 대규모로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자 “좌익, 제2촛불 계획” 진보와 전면전 선언)

천안함 사건 의혹을 제기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종미우익세력’의 이상향인 미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들도 과학적인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종북좌익세력으로 몰렸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11년 3월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두고 “종북좌파를 진보로 부르는 게 옳지 않다는 말이 타당성 있다”고 말했다. 보온병을 포탄이라 부르는 게 옳지 않다는 말의 타당성도 입증됐다.

‘종북좌익세력’ 프레임의 중심엔 ‘그분’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0월에는 촛불집회 등을 두고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 뿌리가 매우 깊고, 매우 넓게 형성돼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념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종북좌익세력’ 프레임은 사실의 문제라기보단 보수우파이자 종미우익, ‘자유민주주의세력’을 자임하는 자들의 선거 전략 성격이 강하다. 이 대통령은 2007년 8월 대선후보 시절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친북좌파 세력과 보수우파 세력이 대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이라고 했다.

검찰총장이 칼을 빼든 정도가 아니라 전쟁을 선포했다. 웬만한 시민들은 척결 대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형국이다. 전쟁과 척결을 피하려면? 이분의 조언은 어떤가.

합리적 의심마저 친북좌파로 모는 세태를 풍자한 ‘장도리’ (2010년 5월 27일자).

합리적 의심마저 친북좌파로 모는 세태를 풍자한 ‘장도리’ (2010년 5월 27일자).

이 당국자는 “(6·2 지방선거 때)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를 얘기하면서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고 해 거기에 다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0년 7월 26일자, “젊은 애들, 북이 그렇게 좋으면 가서 살지”)

이 당국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다. 그도 ‘삼치’ 멤버다. 천정배 의원에 대한 ‘미친 X’ 발언 등 각종 설화에도 굳건히 장관 자리를 지키다가 자신의 딸을 외교부에 특채한 사실이 드러나 불명예 퇴진했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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