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의 시대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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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산하 국립서울현충원이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91)에 대해 사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내 묘역 안치를 약속했다. 현재 동작동 현충원의 장군 묘역은 안치 공간이 없어 장군들은 사망 후 예외 없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고 있다.(중략) 백씨는 6·25 때 전공을 세웠지만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5년 발표한 친일인사 3059명에 포함된 이다.(경향신문 2011년 8월 10일자,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백선엽 “사후 서울현충원 안치” 특혜)

2005년 6월 6일 100여명이 대전 국립묘지 장군 제1묘역에서 ‘김구 선생 암살 배후자, 친일파 김창룡의 묘 이장’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과 군 관리병들이 묘를 둘러싼 채 보호하고 있다. / 경향신문자료사진

2005년 6월 6일 100여명이 대전 국립묘지 장군 제1묘역에서 ‘김구 선생 암살 배후자, 친일파 김창룡의 묘 이장’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과 군 관리병들이 묘를 둘러싼 채 보호하고 있다. / 경향신문자료사진

국립서울현충원은 군·경뿐 아니라 항일독립운동가들도 묻혀 있다. 백씨가 사후 현충원 측의 약속대로 이곳에 안장되면, 현충원은 졸지에 일제 강점기 해외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간도와 만주벌판을 역사적으로 재현하게 된다. 항일운동가와 간도특설대원의 영혼들은 다시 현충원에서 쫓고 쫓기게 되는 꼴이 됐다.

5·18 광주항쟁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2005년 11월 안병하 전 전라남도 경찰국장이 사망 17년 만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안 경무관은 신군부의 광주시민 무력진압 방침에 반대해 경찰관들에게 총기회수 명령을 내리고 시민 편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1980년 5월 26일 직위해제됐다. 그 후 보안사에서 갖은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88년 10월 사망했다.

그리고 지난 8월 6일 5공화국 때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씨 유해가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는 뇌물죄로 징역까지 살았던 범법자였다. 5·18기념재단과 유족회 등이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은 한국 민주주의와 5·18을 능멸한 반역사적 행동”이라며 안장 반대를 주장했지만, 국가보훈처는 안장을 의결했다. 국립현충원은 친일파, 독재와 국가폭력행위 가담자들의 ‘무덤’으로 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 이들의 무덤이었다. 현충원은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과 질곡이 집약된 공간이다. 한신대 김종엽 교수는 2004년 어느 심포지엄에서 “6·25 전사자,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 국가유공자, 이승만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 친일파 등 한데 어울리기 쉽지 않은 인사들이 함께 묻혀 있다”고 말했다.

기념과 추모 공간 내의 충돌은 지속된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씨(1858~1939)와 백범의 장남 김인씨(1918~45)가 묻힌 곳은 백범 암살 배후인 김창룡 전 육군 특무부대장의 묘와 마주보는 곳이다.

9일 오전 10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전북·광주지부와 대전·충남 민언련, 조선일보 바로보기 대전시민모임 등 6개 단체 3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친일 군인 김창룡의 묘를 이전하라”고 촉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여인철 대전지부장은 인사말에서 “민족투사를 탄압한 친일 군인이 어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과 함께 누워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역사를 거꾸로 세우는 일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피를 흘린 애국영령들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경향신문 2003년 8월 13일자, 백범 김구 암살사주 배후인물 김창룡 묘 이전촉구 집회 열려)

라이트코리아 회원들이 2009년 9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호국영령을 외면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지 이장을 촉구하고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라이트코리아 회원들이 2009년 9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호국영령을 외면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지 이장을 촉구하고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강윤중 기자

2008년 6월에도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김창룡 묘 이장 추진 시민연대’ 주최로 집회가 열렸지만, 김창룡의 묘는 이장되지 않고 있다. 유족과 보수단체들은 “공산당 잡은 것도 죄냐”며 되레 반발하고 있다. 김창룡 묘 이전 요구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2009년 9월 10일 현충원 앞엔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한·미우호증진협의회, 보수국민연합, 자유수호운동 등 보수단체 회원 1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은) 친북세력의 알박기다. 묘를 파헤치겠다”며 몰려왔다 제지를 당하자 가묘를 만들어놓고 낫과 곡괭이로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팻말에는 ‘국가반역자 DJ 국장, 현충원 안치 취소’ ‘DJ 비자금 실체 즉각 공개’ 등 문구도 있었다. 언론은 이 사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른바 보수단체들의 흔한 색깔론으로 치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사건이랄 것도 없는 노인들의 해프닝으로 봐도 무방하다. 어쨌거나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밑도 끝도 없는 극우 색깔론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재확인됐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이런 유의 천박한 색깔론은 강화되고 있다.(경향신문 2009년 9월 15일자, 사설,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국립현충원 안장의 ‘꼼수’를 풍자한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1년 8월 8일자)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국립현충원 안장의 ‘꼼수’를 풍자한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1년 8월 8일자)

2010년 10월 14일에는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국가보훈처는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외국인 포함)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이란 규정을 충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공헌과 안장 기준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다. 이후 안현태·백선엽씨의 사례에서 보듯 그 공헌이란 것이 자의적이고 정치적이었다.

현충원은 전근대적 사고가 스민 신분 차별의 공간이기도 하다. 경향신문은 2004년 2월 대령급 이하 군인들은 예외없이 화장돼 3.3㎡(1평)짜리 묘역에 안장되고, 장성들은 시신 매장에다 묘역 넓이도 26.4㎡(8평)나 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국방부는 장군묘의 봉분 설치를 합법화하는 국립묘지령 개정을 추진했다가 반발 여론에 부딪쳐 백지화했다. 장군들의 시신 매장과 묘역 축소도 약속했다. 하지만 8월 현재 장군묘 특혜는 여전하다. 안현태씨의 경우 시신 매장과 함께 봉분까지 설치됐다. 현충원은 군사정권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안씨의 현충원 안장은 단지 그에 대한 특혜일까.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의 민간위원 3명이 사퇴하며 반발했는데도 안장 결정을 강행한 이유는 뭘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명박 정권의 ‘꼼수’가 이 결정에도 녹아 있다.

안씨의 안장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심의위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정권 스스로 보수의 가치를 허물었다는 얘기다. 안씨의 사례는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인사들과 각종 비리 장성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허용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중략) 국립현충원 내 사병과 장군 출신의 묘역을 차별하는 것도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사병과 장군이 똑같이 안장돼 있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권위가 논란이 된 적은 없다.(2011년 8월 9일자, 사설, 국립묘지 위상 스스로 훼손하는 국방부와 보훈처)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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