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비밀을 알려주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07년 이른바 ‘신정아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39)가 22일 그간의 이야기를 담은 <4001>(4월의 책)을 펴냈다. 예일대 박사학위 가짜 사건의 전말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관계, 정치권 배후설과 청와대와의 인연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신정아 사건’의 전후에 관계된 이들이 실명으로 언급되고, 일부 인사의 부도덕한 행위도 적시돼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2011년 3월 23일자, 신정아씨 “정운찬, 교수직 제의… 계속 지분거려”)

신정아씨가 3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자전 에세이 출판기념회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문석 기자

신정아씨가 3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자전 에세이 출판기념회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문석 기자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 출간은 서구 몇몇 나라의 전통이다. 지난해 9월 프랑스에선 <카를라 브루니의 은밀한 사생활>이란 책이 나왔다. 프랑스의 한 기자가 브루니의 친구와 동료, 어린 시절의 유모까지 100여명을 만나 인터뷰한 책이다. 신씨처럼 당사자가 책을 쓴 건 클린턴 전 미 대통령과 불륜관계였던 모니카 르윈스키의 <모니카 이야기>(1999)가 유명하다. 르윈스키는 2004년 중국 출간 때 인터뷰비로 100만 달러를 요구해 외신에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폭로형 책이 종종 나왔다. 2009년에는 마해영씨가 자서전 <야구본색>에서 “현역 시절 복용이 엄격히 금지된 스테로이드를 상습 복용하는 선수들을 제법 목격했다”고 밝혀 야구계에 파장이 일었다. 폭로형 책은 몸담았던 조직이나 한때 ‘절친’이었던 사람들의 부도덕성이나 병폐를 드러내는 게 많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사진)가 1일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발간했다.(중략) 김 변호사는 “대법관에게 150만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중략) “2002년에는 나와 부사장, 판사 셋이서 함께 골프를 쳤는데 이 판사는 6년 뒤 터진 삼성 사건에서 재판장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중략)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견제받지 않는 거대한 권력으로 자리잡은 삼성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어떤 일을 벌였는지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말했다.(2010년 2월 2일자, 김용철 변호사 새 내용 담긴 책 출간)

정치인의 최측근들 책을 빼놓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15대 총선에 나왔을 때 보좌관이었던 김유찬씨도 2007년 <이명박 리포트>를 출간했다.

한나라당 예비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15대 총선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등을 주장하고 있는 김유찬씨는 조만간 출간할 자신의 책 ‘이명박 리포트’에서 “이 전 시장과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이 결별한 이유는 이 전 시장이 정 회장에게 인천제철을 떼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 회장의 종손인 정모 박사로부터 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전 시장 측은 “전혀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2007년 2월 24일자, “이명박씨 인천제철 요구해 정주영 회장과 결별했다”)

김씨는 책에서 “(1996년 선거법 위반 관련) 2심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전 시장으로부터 유리한 법정진술을 해달라며 회유자금을 받았다”고도 주장했다. 김씨는 이후 대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 유포죄’로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2008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미국에선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냈던 스콧 매클렐런이 이라크 침공 당시 부시 행정부의 위선과 기만, 음모를 다룬 ‘거짓말 정부’(원제 What Happened)를 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서점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자서전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뉴시스

중국 베이징의 한 서점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자서전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뉴시스

“솔직하고 정직한 자세를 결여한 우리의 전쟁 주장은 반대당을 자극했고, 그로 인한 당리당략적 반응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더욱 왜곡하고 모호하며 미묘하게 만들었다. 기만의 또 다른 부작용은 이면의 중요한 진실을 바라보는 국민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기만에는 언론도 공모했다.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전쟁의 근본적 이유를 집요하게 묻거나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전쟁을 선전하는 캠페인을 취재하는 데 있었다.” 전쟁 초기 뉴욕타임스 등도 전쟁 캠페인에 동참했던 것을 보면 맞는 지적이다.(2008년 7월 18일자, ‘부시의 입’이 폭로한 부시의 위선)

뉴욕타임스 편집국의 비화를 폭로하는 책도 나왔다.

블레어는 6일 출간될 <주인님들의 집을 불사르며>라는 책에서 “재직 시절 동료 기자들과 자주 코카인 파티를 벌였고, 홍보실 관계자들로부터 기사를 대가로 성상납을 받았다”고 폭로했다.(중략) 블레어는 동료 기자들을 ‘섹스에 미친 10대’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기사를 써주는 대신 공연표, 식사는 물론 섹스까지 제공받았다”고 실토했다.(2004년 3월 6일자, “편집국은 마약·섹스의 소굴”, NYT 전 기자 폭로 책 파문)

그런데 책을 쓴 제이슨 블레어는 기사 날조와 표절로 ‘월드클래스 피노키오’란 비아냥을 들으며 뉴욕타임스에서 쫓겨난 인물. 당시 뉴욕타임스는 “공인된 거짓말쟁이가 쓴 책은 신경쓸 가치가 없다”면서도 블레어의 책 복사본을 구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1990년대 한국에선 현직에 있으면서 용감하게 조직의 비리·부패를 고발하는 책들이 여러 권 나왔다.

김용민의 그림마당(경향신문 3월 24일)

김용민의 그림마당(경향신문 3월 24일)

전북 진안 정천중학교 행정실장 이용호씨가 1987년 교육공무원이 된 후 11년 동안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교육계의 각종 비리 행태와 방법을 고발하는 <너는 그렇게 나는 이렇게 부정부패의 장본인이었다>라는 230쪽 분량의 책자를 최근 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략) 이씨는 자신이 학교 예산을 유용해 중국을 다녀온 경험과 100만원어치의 학습교재를 구입한 대가로 10만원을 받은 사실 등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교육계의 개혁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1998년 2월 14일자, “너는 그렇게 나는 이렇게 썩었다”)

이씨는 이후 전북도 교육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문서 허위작성과 학교장 직인 무단 사용 등이 이유였다. 방희선 변호사는 판사 시절 경험·목격담을 중심으로 1997년 <가지 않으면 길은 없다>를 내며 법원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 봉건·관료적 속성을 고발했다. 아래는 책에 나온 황당한 전관예우의 한 사례.

‘법원 고위직 출신의 한 변호사가 법원을 찾아와 자기가 맡은 사건 재판을 왜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직원들이 확인해보니 그 변호사가 재판 날짜를 잘못 알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먼 길을 왔는데 그냥 돌아가란 말이냐며 오히려 핏대를 세웠다. 결국 재판부는 상대방 변호사를 급히 수소문해 예정에도 없던 재판을 열어야 했다.’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정동늬우스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