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경찰의 이번 수사는 ‘장자연 문건’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사건의 본질을 또다시 비켜갔다는 비판이다. 이번 전모씨가 교도소에서 보낸 편지와 무관하게 장자연씨가 직접 쓰고, 지장까지 찍은 원래 문서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중략) 당시 장씨 주변과 매니저 등을 소환해 실시한 수사기록에는 유력인사의 술접대와 성상납 등의 의혹이 많았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장씨의 죽음과 관련된 수사기록 일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2011년 3월 17일자, 장자연 편지 가짜로 판명됐지만…)

3월 1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양후열 문서영상과장이 ‘장자연 편지’ 필적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 1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양후열 문서영상과장이 ‘장자연 편지’ 필적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경향신문 기사의 이어진 제목은 ‘본질 덮은 채 마무리’다. 장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들은 풍문으로만 떠돈다. 그런데 이 풍문은 불가항력이라기보다는 의지의 부재, 눈치보기 만발에서 비롯된다. 툭하면 ‘괴담’ 운운하며 네티즌 댓글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경찰은 유서라는 물증과 여러 증언에도 불구, ‘본질을 또다시 비켜나며’ 재수사 불가 방침.

본질은 술접대와 성상납 의혹. 장씨는 대체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한 자리에 불려나갔을까. 그를 접대에 동원한 이들은 누구일까.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룸살롱 공화국>이란 책을 냈다. 강 교수는 룸살롱, 요정 같은 ‘밀실’의 본질인 ‘칸막이’는 연고·정실 중심의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라고 한다. 패거리주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칸막이 현상의 이익을 쟁취하고자 하는 게 접대이고, (중략) 주고받는 접대 속에 부정부패가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강 교수의 진단. 이 칸막이 안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했다.

2003년 ㅂ 검사는 지방검찰청 형사1부장으로 재직할 때 후배인 형사3부장 ㅎ 검사와 함께 A씨로부터 8차례 향응을 받았다. A씨는 또 지난해 3월 ㅎ 검사와 ㅎ 검사의 후배 검사들을 부산으로 불러 술자리를 마련했고, 일부 참석자에게는 성접대를 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A씨와 접대 자리에서 처음 만난 모 부장검사는 10여일 후 자신의 부하 검사들을 모두 데리고 재차 A씨와 회식한 뒤 모든 비용을 A씨에게 부담케 한 것으로 기록됐다.(2010년 4월 20일자, PD수첩 ‘검찰-스폰서 밀착’ 고발)

술자리? 룸살롱 자리였다. 검사님 모시는데 1차 삼겹살에 2차 호프만 했겠는가. ‘칸막이’ 안에서 벌어진 일? 건설업자였던 A씨는 분명히 건설 관련 업무에서 편의를 제공받았고, 또한 불법적인 일도 검찰이 눈감아줬다고 증언했지만, 다 무죄판결이 났다. “회식 자리에 제3자를 대동해 식대와 술값을 지불하게 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부적절해 보이는 판결만. 그런데 다음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2000년대 ‘검사와 스폰서’의 접대문화는 애교 수준이다.

대전의 양대 폭력조직 두목이 현직 부장판·검사와 국회의원, 보안대 과장 등과 함께 술을 마시다 편싸움 끝에 칼부림까지 벌인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 서울지검 민생특수부가 폭력조직 두목을 구속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알고도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 확인 및 보고도 하지 않아 사건의 축소 의혹이 짙은 데다, 관련 부장검사는 폭력조직으로부터 금품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인천 꼴망파 두목 전과 누락 의혹사건에 이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1990년 12월 1일자, 판·검사, 의원 폭력배와 술판)

서울지검 민생특수부가 왜 사실 확인과 보고도 안 했을까.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판·검사와 조폭이 술을 마신 곳은 대전 패밀리호텔 6층의 ‘리무진’이란 룸살롱. 민생과 상관없는 곳 아닌가. ‘리무진’에서 벌어지는 일에 민생특수부가 무슨 수로 관여하겠는가. 1990년대 이야기? 2005년에도 한 지역 법원 회식 자리에 변호사가 참석해 술값을 치르고 어느 판사에게 성접대를 한 게 밝혀졌다. 검찰수사관들은 무시하는 건가. 물론 그렇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경향신문 3월 18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경향신문 3월 18일자)

고급 룸살롱에서 2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억대 향응을 받은 검찰수사관 2명에 대해 해임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일반 공무원의 뇌물수수를 엄단하던 검찰이 제 식구만은 봐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2010년 1월 4일자, 억대 룸살롱 향응 검찰수사관 2명 해임)

사법부에 있는 이들에게 ‘스폰서’를 잘 만나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 이들이 적발된 건 룸살롱 주인이 수사관들의 스폰서로부터 술값 1억4000여만원을 못 받자 대검에 진정을 냈기 때문.

국회의원들은 어떨까. 접대 종결자. 특히 국감 기간은 접대 기간.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을 받다 보도된 것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니다. 2005년 술집 여주인에게 폭언을 내뱉으며 일약 ‘대구 밤문화’ 기수로 떠오른 주성영 의원이 대표적이다. 2007년에도 피감 기관장들로부터 단란주점에서 술접대를 받다 논란이 됐다.

검·판사와 ‘금배지’들만 접대받으란 법 있나. 2006년에는 군인공제회 직원 2명이 리조트 업체 직원한테 9개월간 1억3000만원 상당의 룸살롱 향응을 접대받았다가 걸렸다. 접대하는 쪽은 기업이다.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민주당 박병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기업의 법인카드 사용금액 32조9645억원 중 1조5904억원이 호화유흥업소, 9115억원은 골프장에서 결제됐다.(중략) 박병석 의원은 “호화유흥업소와 골프장에서의 법인카드 사용은 기업 로비와 대가성 접대 지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앞으로는 법인카드 사용 대상자와 사용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2008년 10월 9일자, 작년 기업 법인카드 사용액 중 1조656억원 룸살롱서 긁었다)

초과이익공유제가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까지 나오는데 재벌과 기업들, 룸살롱·단란주점들과 이익을 공유했다. 지하경제 살리다 보니 지하벙커 정권이 탄생한 걸까. 2009년 초부터는 ‘접대비 지출내역 보관제도’도 폐지. 50만원 이상 접대시 접대일자·금액, 접대장소·목적, 접대자의 부서명·성명, 접대 상대방의 상호 등을 기록·보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기업 영업활동 규제완화 차원이란다. 아, 프리덤. 접대의 무한 자유. 영업은 곧 접대.

저 통계 중 요정, 한국의 수많은 나이트클럽의 3분의 1가량의 매출인 290억원. 룸살롱 모친뻘인 저 밀실의 은은하고 끈질긴 생명력. 강준만 교수의 <룸살롱 공화국>의 1장은 ‘요정의 전성시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후방근무 장병들에게 “요정, 식당 출입을 엄금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고급요정 폐쇄령도 반복됐다. ‘개신교 반공주의’에 ‘요정 반공주의’도 추가.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정동늬우스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