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기도 ‘통제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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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인사말 후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인도한 합심기도 시간에 김윤옥 여사와 함께 1분여간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2011년 3월 4일자, 이 대통령 “교회가 국민통합 가교 되어주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을 꿇어 논란이 된 국가조찬기도회의 원조는 ‘대통령 조찬 기도회’다. 1966년 처음 조선호텔에서 열렸는데, 정작 박정희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기사를 보면 “(참석자들은) 퍽 허전한 가운데 기도회를 마쳤다”는 구절이 나온다. 참석자들이 다음과 같은 박 전 대통령의 불참 이유를 들었다면, 퍽 ‘섬뜩한’ 기분을 느꼈을 법하다.

박 대통령은 비록 기독교를 믿지는 않으나 종교에 대한 관심은 많아 “믿음이 있으면 은밀한 가운데 기도해야 하며 남을 도와주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인데 현관(顯官·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호화롭게 기도회를 갖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자기 소신을 말하더라고 12일 측근이 전했다. 박 대통령은 “기독교를 믿는 정치인들이 이처럼 종교를 남에게 보이기 위해 이용하기 시작하면 교(敎)가 타락되고 정치도 망하는 것”이라고 주위사람들에게 나무라더라는 것.(1966년 3월 12일자, 기도는 은밀한 가운데서)

박 전 대통령은 2회부터 참석했다. 조찬기도회는 대통령의 뜻을 알리는 정견 발표장이면서, 종교인들의 충성 서약의 장으로 기능했다. 애초 “기도는 은밀한 데서 해야 한다”는 소신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박 전 대통령은 호텔에서 열리는 ‘호화로운 기도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10월유신에 하나님의 축복이 깃들길 기원하는 데 마다할 리 없었다.

김준곤 한국대학생교회 대표는 메시지를 통해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세계의 주시 속에 벌어지고 있는 10월유신이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의 기적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1973년 5월 1일자, 하나님의 가호 기도, 제6회 대통령 조찬기도회)

조찬기도회 기분? ‘베리 굿’

박정희 대통령은 1일 오후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 등 이날 아침의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8명의 외국 인사와 박현숙 준비위원장 등 국내 인사 9명을 청와대에서 접견, 차를 들며 환담한 후 이들과 기념 촬영.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종교행사처럼 깨끗하고 기분좋은 행사는 없다”고 말하고 “그 이유는 그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개인의 이해관계나 세속적인 정치 같은 것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1974년 5월 2일자, 종교행사처럼 깨끗한 건 없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조찬기도회에 나갔다. 그런데 이분도 한때 망국적인 병을 앓았나. ‘안정된 복지국가’라니.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어렵고도 막중한 국운 개척의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여 안정된 복지국가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980년 8월 6일자, 전두환 국보상위장 “막중한 국운 개척 사명 꼭 완수”, 국가 민족 위한 조찬기도회서 강조)

12·12사태 이후 신군부가 권력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는 매달 열렸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칭송과 감사의 기도가 회장에 울려퍼졌다. 기도회는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정진경 목사는 국보상임위의 전 위원장을 위한 기도에서 “일찍이 군부에 헌신하여 훌륭한 지휘자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도록 한 데 감사한다”고 말하고 “어려운 시기에 국보상임위원장으로서 사회악의 제거에 앞장설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기도했다.(숙원인 남북통일 조국 번영 기원 “훌륭한 지휘자로 나라에 충성, 사회악 제거에 앞장서서 감사”)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국가조찬기도회는 독재를 정당화하고 면죄부를 주는 자리였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5공비리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가조찬기도회도 청산 대상으로 부각됐다.

특히 감리교민주화추진위원회 소속 교역자들은 지금까지 군사정권의 하수인으로 협력했거나 이른바 ‘국가원수를 위한 조찬기도회’ 등에 앞장선 교역자는 모든 교단 내 공직에서 사퇴할 것과 교단 재산을 사유화한 인사들의 퇴진 및 재산 반납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1988년 11월 10일자, 종교계 5공비리 척결 회오리)

한국 사회에서 ‘촉구’는 곧 ‘무시’로 이어진다. 퇴진과 재산 반납을 했다는 소리는 없었다. 8년 뒤에야 개신교 내부에서 사과 성명이 나왔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홍순우)를 중심으로 한 교계 중진인사 32명도 지난 4일 “두 전직 대통령의 불법행위에 동조했던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중략) 이들은 “특히 우리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5공 초기에 군부의 집권을 도운 결과를 가져오게 한 과오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느끼며 국민과 교인들 앞에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1996년 1월 7일자, 개신교 잘못된 과거 참회 여론. 복음주의협 사과 성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88년 이후 국가조찬기도회의 무게감은 떨어졌다. 교단 일각에서 제기된 국가조찬기도회 비판도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점도 한몫 한 듯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무교였으나 육영수 여사가 북한산 도선사 신도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로 가지 않았나. 권력자의 종교가 개신교인지 불교인지 따지지 않는 ‘관용’(?)을 보여준 시절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 이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개신교 장로였는데….

김영삼 대통령은 16일 힐튼호텔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 (중략) “나는 대통령으로서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 나라를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다”고 고백하고.(1997년 4월 7일자, “위기는 기회, 우리에겐 저력이 있다”)

하지만 매일 엎드려 기도한다는 김 전 대통령은 힐튼호텔에서 실제로 엎드려 기도하지는 않았다. 엎드려 기도하라고 명령하는 목사도 없었다.
민주화 덕분일까. 조찬기도회에서 최고권력자에 대한 맹목적 찬양은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실업자 구제를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적극적인 국민운동을 일으켜달라”고 협조를 요청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이던 2005년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규칙으로 표결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자 도리”라며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해줄 것을 부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권력은 종교에 넘어간” 것일까. 수쿠크 법(이슬람채권법) 논란에 따른 조용기 목사의 ‘대통령 하야’ 발언에 변변한 대응도 못한 채 이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무릎기도를 올렸다. 길자연 목사의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에 잠깐 머뭇거리다 끝내 복종한 것. 정교분리 원칙은 온데간데 없이 정치에 군림하는 개신교 권력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우국충정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 자체는 보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에 기대어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종교의 진정한 가르침과 무관한 ‘그들만의 기도회’일 뿐이다.(2011년 3월 5일자, ‘여적’ 국가조찬기도회)

<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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