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박근혜 ‘고지’ 선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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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눈]부지런한 박근혜 ‘고지’ 선점할까

입지가 굳어질수록 국민들의 식상함은 빨리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선거의 역사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싱크탱크라는 ‘국가미래연구원’(가칭)이 발족됐다. 국가의 미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지만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가미래연구원’이 ‘박 전 대표 미래 연구원’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참가자들의 면면을 볼 때, 박 전 대표와 나름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뭉친 이유도 잘 알 것 같다.

지난번 대선 경선 때 쓴물을 맛본 이유 중의 하나가 행동이 굼떴기 때문이라는 자성에서, 이번에는 부지런 좀 떨자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측의 부지런함은 지난번 연평도 사격훈련 때부터 감지됐다. 당시 국민들은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나 노심초사할 때도, 박 전 대표는 복지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는 싱크탱크마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런 부지런함이 내 눈에는 “글쎄~”라고 비쳐지는 이유는 뭘까? 3김 시대 이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공통점이 몇 가지 발견되는데, 이 중 하나로 전·현직 대통령 둘 다 당내 비주류였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비주류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신선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일종의 박해와 같은 피해를 받는 듯한 이미지를 줘서 오히려 득표에 유리했었다는 것인데, 박 전 대표측은 이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박 전 대표는 지금까지는 분명 당내 비주류였지만, 사실상 ‘주류성 비주류’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6년 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유일한 유력 대권후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신선감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다가 공청회 열고, 싱크탱크까지 대거 선을 보였으니, 이젠 선거는 치르나 마나라는 생각을 국민들 다수가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지가 굳어질수록 국민들의 식상함은 빨리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선거의 역사이다. 이는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대표의 과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회창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등장한 이후 근 6~7년간 이회창 후보는 일반인들 입장에선 대통령이 된 거나 진배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가 번번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즉 국민들의 눈에는 이미 대권을 가진 ‘기득권’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욕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일반 정치인에게는 사소하게 간과될 수 있는 문제도 이회창 후보에게는 큰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득권으로 비쳐지는 시간이 길수록 두드러지는데, 특히 2002년 대선 때 이런 측면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빨리 세(勢) 과시에 몰두하면 국민들의 눈에는 ‘식상한 기득권’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농후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선에 득 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친박계는 박 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바로 정책이기 때문에 복지 공청회도 열고, 싱크탱크를 일찍 출범시킨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우리나라 선거가 정책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이미지가 선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도 그렇고, 미국도 선거에서 이미지가 중요하다. 정치란 좋다 나쁘다라는 것을 떠나 일단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미지가 선거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다면 과연 지나친 부지런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당연히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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