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사회와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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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엽의 눈]네트워크사회와 해체

구래의 국가주의적 공공성의 질서가 해체되는 만큼 대안의 새로운 공적 질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속의 버거움이 어깨를 짓눌러도 무심한 시간은 빠르기만 하다. 어김없이 흐른 시간은 어느덧 한 해의 막바지에 와 있다. 2010년 연말은 새천년과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난 때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은 20세기의 사회질서가 빠르게 해체되었던 시기이다. 지식정보사회, 네트워크 사회, 해체사회, 탈근대사회 등 20세기적 근대성의 균열과 해체를 전망하는 사회학적 개념들이 등장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지구적 수준에서 이러한 해체적 경향이 나타난 것은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1990년대에 가시화되었고, 특히 지난 10년간 이런 변화가 더욱 뚜렷해졌다. 기억에 남는 최근의 몇몇 사건들은 이 같은 해체적 경향을 응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떠올려볼 만하다. 

2008년 6월, 서울광장에서는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가 주관하는 집회가 열렸다. 특수임무수행자회는 전직 북파공작원(HID)과 특수첩보부대 출신의 모임으로 “국가가 은폐하고 가족들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희생을 국민들이 기억하기 바라는” 취지에서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집회의 실제 의도는 논외로 하고, 당시 서울광장 한가운데는 붉은 카펫이 깔리고 순직자 7726명의 위패와 태극기가 꽂혔다. 그리고 회원들은 군복을 입고 추모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이들은 공개되지 말아야 하는 비밀공작원들이었다. 이들이 활동한 영역은 근대국가의 공적 영역과 국가간 질서에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종의 숨겨진 영역이다. 이들이 서울광장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자신들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확인시킨 것은  이면과 표면이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국가질서의 균열을 의미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 생생한 ‘미네르바’사건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불안 속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서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온다고 예측하면서 모든 미디어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이름 없는 네티즌의 경제상황에 대한 예측이 정부와 학계의 공인된 전문가의 권위를 넘어서 국민적 기대를 모은 것이다. 그는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되었고, 2009년 4월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공론장의 확장과 정보 및 토론의 자유로운 개방구조에서 정부나 전문가의 일방적 권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국가중심 권위구조의 해체적 징후라 할 만하다. 

2007년 1월 웹상에 처음 등장한 위키리크스(WikiLeaks)는 정부와 민간단체의 비밀문서를 폭로하는 웹사이트다. 위키리크스는 아시아, 구 소비에트연방,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중동지역 등의 억압적인 제도를 폭로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올해 들어 위키리크스는 미 국방부의 기밀자료를 공개했고, 언론인을 포함한 12명의 사상자를 낸 2007년 7월의 바그다드 공습 비디오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는 다른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국가간 공식외교의 질서에서는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이면을 폭로함으로써 무엇보다도 근대적 국제 질서와 힘의 우위에 기초한 위장된 정당성을 해체하는 효과를 가졌다. 지구화와 네트워크 사회의 핵심적 균열을 보여준 셈이다.     

21세기의 첫 10년은 나라 안과 밖이 동시적으로 네트워크 사회적 해체를 경험한 시기였다. 구래의 국가주의적 공공성의 질서가 해체되는 만큼 대안의 새로운 공적 질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트워크 사회의 해체적 경향은 정부와 국가권력, 기업과 시장권력이 은폐하고자 하는 음모를 파괴하는 데 위력적이다. 이러한 민주적 해체의 경향이 반영되면서도 새로운 통합의 구심을 갖는 공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과제일 수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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