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편가르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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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의 눈]무상급식 ‘편가르기’ 논란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순간, 건강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아닌 피아를 식별하는 인식표를 선택하는 수단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무상급식’ 문제가 세밑 정치권의 뜨거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측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도 ‘의무급식’이라는 용어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개발시대에도 ‘의무급식’은 존재했다. 실제 1970년대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학생들의 부족했던 영양보충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빵을 지급했던 것은 배우지 못한 국민들에게 의무교육을 제공하고, 곤궁하던 국민들에게 인간적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건강의 기초권리를 인정하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반대측의 논리는 명료하다. 먼저 배우지 못해서 글을 읽지 못하던 시대, 먹지 못해서 대다수가 굶주리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즉 현재 급식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의무급식은 낭비라고 생각하며, 그보다는 오히려 그 재원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효율성의 원칙으로 보더라도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인식이다.

핵심은 ‘소외된 학생에 대한 지원’이라는 ‘사회적 선의’의 필요성에는 양측이 모두 공감하면서, 단지 방법론에서 맞서는 문제였던 것이다. 때문에 이 문제는 어렵더라도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토론하고 국가적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가능한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의제이기도 했다. 개발시대에 성장 우선의 드라이브가 당위적이었다면, 이제 성장에서 균형과 복지로의 방향 전환 시점은 언제인지, 속도와 한계는 어디에 있는지를 논의해야 할 시기에 ‘좋은 의제’가 등장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 문제를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순간, 건강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아닌 피아를 식별하는 인식표를 선택하는 수단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국민은 어떤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포퓰리즘적 정치구호에 넘어간 어리석은 국민이거나 선동적 좌파의 일원이 되고, 성장보다 균형을 중시하면서도 효율성을 고민하던 국민들은 일거에 성장과 효율 중심의 우파진영에 가담하는 형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 시장의 논리대로 이 문제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면 지역주민의 개발욕구를 자극하는 용산과 강남, 그리고 한강변 개발과 뉴타운, 또한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 등의 구호를 누군가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해도 대답하기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디자인에 투자할 돈으로 더 중요한 국방력 강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에 대한 반박 논지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이 문제는 선과 악의 판단을 넘어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했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측이 모든 학생들이 공평하게 급식비를 내되 그 영수증으로 중산층은 소득공제를, 저소득층은 제출된 영수증에 대한 즉시환급을 시행하는 식의 정책적 대안이라도 제시했더다면 어떠했을까? 즉 이 문제는 양측이 이정도의 간단한 대안이라도 제시하고 서로 타협을 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애당초 정치적 이슈로서 선과 악의 구도, 혹은 좌와 우의 구분짓기의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이없는 논란으로 이어진 문제가 된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 문제는 오로지 양심과 진정성의 문제이며, 양측 중에 어느 쪽이건 먼저 대안을 내놓고 대화를 시도하는 측이 이기는 싸움이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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