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사회갈등의 진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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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엽의 눈]정부는 사회갈등의 진원지

이명박 정부에서 수장이 문제가 되어 조직을 식물상태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비단 인권위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하다.

사회갈등에 관한 대부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수준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약 90%에 이른다. 반면에 실제로 개인이 갈등을 경험한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의식과 개인의 갈등 경험 간의 이러한 격차를  설명하는 데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갈등의 심각성을 체험하는 방식, 즉 미디어가 날마다 쏟아내는 수많은 갈등현실로부터 판단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오늘날 뉴스 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갈등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충돌이 많다. 시민을 대신하는 시민단체가 정부와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항의하는 것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비록 이러한 갈등을 시민 개인들이 직접 체험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정치권력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갈등의 진원지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통합의 구심이어야 될 ‘정부’가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갈등의 원천이 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사회는 정부를 진원으로 하는 갈등이 일상적 수준을 넘어서 있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가장 많이 갖는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기구를 대통령 직속 기구화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조직규모의 대폭 축소에다 안경환 인권위원장의 사퇴가 뒤따랐다. 급기야 기구에 어울리지 않는 인사로 평가된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취임과 파행적 인권위 운영이 문제가 되어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이 연속적으로 사퇴하더니 인권위가 위촉한 61명의 위원들이 집단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사퇴한 위원들은 성명서에서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과 정부 눈치보기로 인해 인권위는 이제 ‘좀비기구’가 되었고, ‘식물위원회’가 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전국의 621개 인권 및 시민단체 또한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일이 이쯤 되면 인권위원장 사퇴 건은 막무가내로 뭉개고 있는 현병철씨의 개인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된다. 대통령은 공석이 된 상임위원직에 또 다시 기대 밖의 인물들을 내정함으로써 사퇴한 위원들과 시민사회의 요구에 싸늘하게 응답했다. 시민사회와 대통령 사이의 벽이 너무 높고 두껍다. 진보적 인사로 잘 알려진 서울대 조국 교수가 위원직을 사퇴하면서 “인권의식이 있고 지도력이 있는 보수인사에게 인권위원장을 맡겨달라”고 한 성명은 이 차가운 벽을 두드리는 처절한 호소로 들린다.  

시민단체나 해당 분야와 가장 활발한 소통이 필요한 정부 부처에는 전문성을 가진 장관이 임명되어야 조직이 활기를 띠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수장이 문제가 되어 조직을 식물상태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비단 인권위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하다. 통일부가 그러하고, 여성부가 그러하며, 심지어는 한국연구재단 또한 그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포함한 이러한 정부기구들은 가장 많은 소통이 필요한 영역이며, 미래의 권력 가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이른바 소프트 파워를 생산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정부를 진원으로 하는 사회갈등의 핵심은 시민의 요구를 거슬러 가는 거역의 정치로서의 ‘역치’에 있다. 가장 절실하게 소통이 필요한 곳에 갈등을 양산하고, 장기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곳에 그러한 에너지의 원천을 고갈시키는 역치의 정치과정은 미래 없는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역치와 거역의 밤이 깊고도 길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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