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쥐떼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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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의 눈]금융시장의 ‘쥐떼효과’

지난해 자산운용사들의 ‘미래에셋 따라하기’와 이번 메이도프 사기 사건은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한생명, 한화투신운용, 사학연금, 한국투신운용, 삼성투신운용, 하나UBS 자산운용, 알리안츠자산운용… 월가 폰지 사기범 메이도프에게 돈을 떼인 (정확히는 맡긴) 국내 기관투자자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내 굴지의 금융 회사와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법인이 줄줄이 연루되어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 금융사들도 현재까지 스스로 밝힌 곳만 해도 HSBC은행, BNP파리바은행을 비롯해 세계적인 은행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아직 손실 규모를 은폐하고 있는 헤지펀드나 기타 투자회사들의 피해 규모는 윤곽도 드러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피해가 광범위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황당한 사기를 당한 데 대해 탓하거나 문책하는 분위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전 세계 금융기관의 공통적 현상이므로, 우리나라 자산운용사들의 펀드 손실은 너무나 당연하거나 불가피했다고 생각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이번 사건은 ‘주주와 고객에 대한 명백한 배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는 다 같이 잘못하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다수의 잘못은 아무리 커도 문제가 없지만, 소수의 잘못은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죽는다는 이런 관행은 우리 금융시장을 위험에 빠뜨리고 소신보다는 서로 눈치만 보면서 몰려다니는 ‘쥐떼 효과’를 배가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점에서 지난해 자산운용사들의 ‘미래에셋 따라하기’와 이번 메이도프 사기 사건은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시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수익을 올릴 때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이가 손해를 볼 때 더 많은 손해를 보는 것보다 훨씬 나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누군가가 먼저 수익을 내면 다른 금융사들도 따라서 투자하고, 나중에는 그 결과 많은 투자사들이 투자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다시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내는 ‘쥐떼효과’가 메이도프 펀드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 때문이다.

메이도프의 투자회사인 ‘버나드 메이도프 LLC’는 지난 15년간 다섯 번을 제외하고는 매월 이익을 냈다. 그리고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매달 배당을 했다. 더구나 이런 수익률은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아시아 외환위기, 닷컴 버블 붕괴 등의 위기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보장되었다. 또 그의 투자 내역이 국채와 일부 헤지펀드에 재투자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투자 내용이 없었음에도 투자자들은 그런 수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믿음의 근거는 단순히 외국 금융기관들이나 할리우드의 유명인사들이 가입하는 펀드이기 때문에 가입했다는 ‘쥐떼효과’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사건은 지난 2~3년간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자산 비중이 바뀌며 금융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이 급격히 커졌지만, 그 돈이 스스로 관리할 능력이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손에 쥐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이 원안대로 시행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거나 초등학생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스러운 일이다. 역지사지의 측면에서 만약 자본시장통합법이 지금부터 2년 전에만 통과되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을 맞이하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더 늦기 전에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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