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퇴행, 대중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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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의 눈]정권의 퇴행, 대중의 진화

연이은 촛불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의 대중은 기존의 좌우 이념 문제에 붙들리지 않으면서도, 미래형 의제라고 할 수 있는 생명평화주의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전후로 나타나고 있는 현 정부의 무능과 오만은 오늘의 집권세력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부터 얼마나 퇴행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여러 합리적 증거를 통해 드러난 것이지만, 정부 협상단은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 주권을 자진해서 포기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거짓 해명과 결코 논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동어반복을 통해 ‘싸고 맛있는 고기’를 들여올 것을 거듭 천명했고, 이 칼럼이 발표되는 시점이면 장관 고시가 공표될 확률이 높다.

만일 사태가 이렇게 전개된다면, 그것은 인내 속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정부에 ‘민의’를 전달해온 국민들의 의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임은 물론, 민의와 국익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적 질서에 대한 부정을 정부가 앞장서서 저지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중대한 사태를 획책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늘의 이명박 정부는 지금까지 ‘민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정권의 입장만 강박적으로 반복했던 ‘독백 정부’에서 ‘독재 정부’로 퇴행을 가속화하는 심각한 역사적 반동 상태로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원로학자인 리영희 선생을 포함하여, 진심으로 오늘의 현실을 염려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이 독재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이 정부에 대한 고언을 멈추지 않았지만, 퇴행의 가속도는 더욱 높아만 가고 있어 우려스럽다.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한 정부가 국민의 들끓는 민심을 무시하는 손쉬운 방법은 ‘공안정권’의 조성이었고, 지금 이명박 정부 역시 이러한 구태를 반복하는 징후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국무총리가 고압적인 담화문을 발표하고,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공안기관들이 시위의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전경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시위대를 연행하는 풍경은 21세기 한국 민주주의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묻게 한다.

그러나 제도 민주주의의 퇴행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민들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참으로 위대하게 진화해가고 있다. 연이은 촛불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의 대중은 기존의 좌우 이념 문제에 붙들리지 않으면서도, 미래형 의제라고 할 수 있는 생명평화주의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집회 방법 역시 종래의 지도부와 대중이라는 위계화된 동원 양식과는 다른 자발적 참여와 ‘만민공동회’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민주주의의 구성 원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오늘의 촛불 대중은 한국적 형식의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의 개화라고 명명할 수 있는 태도를 통해 민의 표출의 정당성을 거듭 확인하면서, 집권세력들의 시대착오적인 권력 독점과 민주주의에 대한 오도된 시각의 부당성을 평화적으로 또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 오늘의 촛불 대중에게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분노가 이끌어낸 ‘반대’가 아니라, 참으로 아름다운 생명과 평화, 그리고 문화국가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생성적인 ‘제안’과 ‘모색’의 태도다.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은 아름답다.

<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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