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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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의 눈]인간은 원래 착하다

선과 악, 어느 쪽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울까? 최근 심리학·인류학·신경과학 분야 연구들은 인간이 가진 선한 측면의 선천적 근거를 밝혀내고 있다.

최근 중국 쓰촨 지역 대지진의 참사는 그야말로 지옥도를 방불케 한다. 무너진 건물 잔해들, 길 한 쪽에 방치된 채 부패되는 시체들, 사랑하는 이의 생사도 몰라 울부짖는 사람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4명의 학생 위에서 양팔을 벌린 채 교탁 위에 엎드려 제자의 생명을 구하고 숨진 채로 발견된 고교 교사가 있었다. 인간이란 너무나 고귀한 도덕적 존재임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극한의 악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미국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lip Zimbardo)는 2004년 4월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 병사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짐승처럼 학대하는 동영상에 주목했다. 그 동영상은 미군 헌병들이 포로들을 개줄로 묶어 땅바닥에 끌고 다니고, 벌거벗긴 채 사나운 군용견을 풀어놓은 방 안에 가두는 등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주동자의 심리를 직접 면접한 결과 가학적 정신이상자일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심리 상태라고 결론내렸다. 이렇게 인간은 악함 또한 지니고 있다. 선과 악, 어느 쪽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울까? 최근 심리학·인류학·신경과학 분야 연구들은 인간이 가진 선한 측면의 선천적 근거를 밝혀내고 있다.

인간이 도덕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무엇보다 공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감(emphathy)이란 자신의 상처만큼 똑같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버클리대학의 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Alison Gopnik)은 학교일에 지치고, 집안 일에 좌절한 나머지 소파에 주저앉아 엉엉 울 때 두 살도 채 안 된 아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반창고를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닥치는 대로 붙였다는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렇게 어린 아이도 남의 고통에 공감하며, 도움을 주려는 행동을 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한 쌍의 쥐를 나란히 위치한 우리에 각각 가둔 다음 첫 번째 쥐가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와서 이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먹이가 나오는 그 순간, 옆에 있는 다른 쥐는 전기 쇼크를 받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첫 번째 쥐는 머지않아 스스로 먹이를 먹는 것을 포기하고 굶주림을 택한다. 내 옆, 다른 개체의 고통은,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괴로운 탓이다.

남을 도와주려는 행동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바르네켄(Warneken)과 토마셀로(Tomasello)는 두 살 전후의 걸음마 아기들을 대상으로 아기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난 장난감을 가져다 놓았다. 알록달록한 작은 고무공이 가득 찬 볼 풀, 작동시키면 재미 있는 소리를 내는 화려한 장난감들이었다. 아이들은 볼 풀에 들어가서 장난을 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실험실 구석에 있던 실험자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볼펜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주우려는 시늉을 했다. 실험자가 볼펜을 집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던 대부분 아이들이 즉각적으로 놀던 것을 멈추고 펜을 주워 주었다. 한창 재미난 놀이에 빠져 있는 이 어린 아이도 다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이를 알아채고는 놀이를 멈추고 도와주는 선(善)함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 마크 하우저(Marc Hauser)에 따르면, 언어학자들이 사람들에게는 언어 습득에 필요한 선천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인간은 도덕적 천성을 타고난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타고난 자신의 선한 본성을 자꾸 잊어가는 것은 아닌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과도한 경쟁심이 우리를 악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우리는 원래 선함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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