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총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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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의 눈]원자바오 총리의 눈물

수십 명이 바닷물에 휩쓸려가도 골프를 즐긴 도지사, 태풍이 나라를 휩쓰는데 공연을 관람하는 대통령, 산불이 나서 백두대간이 불타오르는데 나이스 샷을 외친 총리의 모습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원자바오의 눈물은 가히 충격적인 장면이다.

중국의 지도부 선출 절차는 지극히 비민주적이다.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주석과 총리와 같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플라톤의 ‘철인정치론’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중국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려면 지역 당에서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들이 중앙정치 무대에서 오랫동안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는 절차를 거친다. 물론 거기에도 지역과 정파에 따른 파벌이 있고, 권력을 향한 치열한 권모술수가 맞부딪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미디어로 만들어진 벼락스타는 나타날 수 없다. 나름대로 검증된 최고의 선수들만 모이는 것이다.

실제 주석과 총리를 선출하기 위해 베이다이허(北載河)에 모인 상무위원들이 무슨 회의를 하는지, 어떤 거래를 하는지는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내리는 결론은 항상 같다. 보통 가장 자질이 뛰어난 테크노크라트는 총리로, 출중한 정치력을 갖춘 사람은 주석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이렇게 선출된 지도자들은 소위 ‘그들의 인민’을 위해 충실히 봉사한다.

이런 선출 절차가 과거 우리의 체육관 선거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대의정치를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비민주적인 시스템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이런 제도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공산당 일당 독재의 영향으로 중국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음에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무리 없이 잘 돌아가는 이유가 바로 제대로 뽑힌 최고지도자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국민소득이 3000~5000달러 수준을 넘으면 관료들의 부패와 성장의 양극화로 사회 불안이 태동하는 것이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중국은 수많은 인구와, 또 그만큼 많은 소수민족, 그리고 넓은 영토와 극심한 소득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두고 중국인들의 만만디 정신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을 지탱하는 힘은 ‘맑은 윗물’에 있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청빈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은 정평이 나 있다. 지난주 중국의 지진 참사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현장으로 달려간 시각은 지진이 발생한 지 2시간 만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여진이 1600회나 일어나고, 공항마저 폐쇄된 피해 지역에 묵으면서 메가폰을 들고 피해 복구를 진두지휘했다. 그의 일성은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아이의 볼을 부비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아이를 잃은 어머니에게 세 번이나 절을 하기도 했고, 위험지역의 구조를 망설이는 공병대에 “너희들을 키운 것은 인민들이었음을 기억하라”고 외쳤다.

이 소식을 외신으로 접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편으로는 ‘공산당 특유의 쇼’라는 냉소적인 평가와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의 생각은 ‘헌신하는 지도자의 모습에 감명받았다’는 쪽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서해안에 해일이 밀어닥쳐 수십 명이 바닷물에 휩쓸려가도 골프를 즐긴 도지사, 태풍이 나라를 휩쓰는데 공연을 관람하는 대통령, 산불이 나서 백두대간이 불타오르는데 나이스 샷을 외친 총리의 모습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원자바오의 눈물은 가히 충격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있는 민주적인 시스템을 가진 우리나라가 천년만년 공산당 일당 독재를 하겠다는 나라의 시스템이 뽑은 지도자를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하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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