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시위 희생, 지금은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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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민족민주동맹 대변인 우 르윈·한타민 두 사람이 밝힌 ‘소극적 대응’의 변

어쩌면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혹은 뼈아픈 물음이 될지도 모르겠다. 버마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이하 민주동맹). 그 민주동맹은 과연 버마 민주화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해왔는가? 최근 승려들이 주도한 ‘항쟁급’ 시위를 보며 다시 한 번 떠올리는 물음이다.

버마 전역에 산재한 민주동맹 당원들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 타이-버마 국경지대와 한국 등지의 해방구 지부들도 그 어느 때보다 밀도 있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동맹이라는 ‘당’을 놓고 보자면, 폭발적으로 솟구친 민주화 열망과 최악으로 치닫는 경제상황을 두고 드러난 반정부 감정의 물결이 출렁이는 이 ‘황금’ 기회를 ‘방치’하고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시위에 나서면 죽이는데 어쩌란 말이냐”라고 민주동맹 대변인은 내게 반문했다.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경험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연로한’ 민주동맹 지도부의 투쟁력에 분명 한계가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본부 전화는 끊긴 상태였다. 인터뷰 날짜만 잡아놓고 들이닥치긴 했는데 대변인들이 몇 시에 나타날지도 알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시위 소식이 속속들이 밖으로 전해지긴 했지만, 버마는 여전히 21세기 첨단 테크놀로지에서 한참 거리를 둔 사회였다. 휴대전화는 2000달러를 웃돌았고 그냥 주소를 들고 사람을 찾아야 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것 또한 독재가 부추겨온 후진사회의 일면이기도 했다. 그들은 통신, 미디어, 사진과 비디오 등등 이런 것들에 아주 진절머리를 내는 이들이다.

세 시간쯤 기다리고 나니 정책담당 우 르윈(U. Lwin·83) 최고 대변인이 나타났다. 그 외에도 당내 정보국 소속 간부인 한타민(Han Tha Myint·60), 양윈(Nyangwin), 그리고 최근 잡혀간 한 조우(Han Zaw)가 민주동맹의 대변인들이다. 다음은 우 르윈 최고 대변인과 한타민 대변인과 연속으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칼라 조(이하 조): 최근 대규모 시위가 세상을 놀라게 했고 버마의 민주화 열정을 세상에 알렸다. 현재는 소강상태인데, 조만간 다시 재개될 것 같은가?

우 르윈 민족민주동맹 최고 대변인

우 르윈 민족민주동맹 최고 대변인

우: 르윈(이하 우) ‘소요사태’(영어가 유창한 그는 ‘riot’라는 표현을 썼다)와 관련하여 그 초기 시위는 포코쿠라는 지역에서 일부 승려들과 주민들이 시작한 것이다. 버마 사회에서 승려는 일반인보다 우위에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승려들을 존경한다. 그런데 그런 승려들이 폭행을 당했으니. 기름값 인상 이후 민생고가 더욱 어려워진 가운데 승려들이 2시간가량 타운을 돌아도 공양을 얻지 못했고 결국 시위가 촉발된 거다.

조: 일회성 해프닝 같은가 아니면 켜켜이 누적된 반정부 감정이 솟구친 것으로 보는가?

우: 우연한 건 아니다. 이건 종교적 파업이다.

조: 종교적 파업? 당신의 언어인가?

우: 우리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퐁지(hpongyi, 누비스라고 불리는 10대 승려들과 달리 퐁지라고 불리는 20대 이후 승려들은 불가에 완전 귀의한 직업적 승려들이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이를 규칙적으로 한다. 퐁지 없이 승려는 존재할 수 없다. 내 83년 인생에 이런 일은 처음 봤다. 우린 승려들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나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승려들을 건드린 그 사태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이다.

조: 그런데도 당신 당, 민주동맹은 군부와 여전히 대화와 협상만 요구하지 않나?

우: 우리가 아니라 유엔안보리가 말하는 것이다.

조: 그렇다면 민주동맹의 공식 입장은? 군부에 대한 요구사항은 정확히 뭔가?

우: 우린 성명을 발표했다. 매우 불행한 광경이라고. 우리 당원들도 220명 이상 연행되었다. 공식 입장은 성명서에 자세히 있으니 그걸 봐라(인터뷰 이후 받은 10월 7일자 발행 성명서는 ‘대화’가 민주동맹의 원칙적 입장임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우린 이 ‘퐁지’ 이슈를 계속 끌고 가진 않을 것이다. 대중은 이 사태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

조: 어제(15일) 유엔 특사 이브라임 감바리가 방콕을 방문했고 버마 문제를 들고 주변국을 순방할 예정이다. 군부와 민주동맹 사이의 대화를 중재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은데, 특사와 유엔에 어떤 요구사항이 있나?

우: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가 아웅산 수치와 대화를 더 나눈 후에 뭔가 나올 것이다.

조: 민주동맹은 유엔이나 버마 내 외교가와 접촉이 전혀 없는가?

우: 유엔파견 인권기구 대표 찰스 패트리스를 유엔개발프로그램(UNDP) 사무실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난 적이 있긴 한데….

조: 유엔특사가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접촉해야 한다고 보진 않는지?
우 그러길 바란다.

조: 군부와 야당 간의 대화를 중재하는 유엔 방식에 동의하나?

우: (12일 발표된) 유엔 안보리 성명이 매우 의미 있다.

조: 망명단체들과 망명 언론들은 너무 약하다고 지적하는데.

우: 좀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유엔 안보리 성명은 모두 우리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나는 버마인들을 잘 안다. 군부(SPDC)도 알고 모두 다 안다. SPDC는 이 성명에 매우 화가 났다. 아주 강하진 않아도 군부에 여전히 모진 성명이다.

조: 하지만 이제 ‘말’보다 ‘실천’을 좀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동안 성명은 수도 없이 나왔지만 변한 게 없다.

우: ‘말’은 중요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이미 수치 여사와 대화하기 위해 코디네이터(노동부 차관 아웅치는 9일 임명됨)도 임명했다.

조: 최근 시위는 승려그룹과 88세대 운동가들이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주 야당인 민주동맹이 지도적 역할을 하지 않은 것에 유감스러워 하는 분위기도 있다.

우: 글쎄 우린 이 나라를 위해 정말 힘들게 일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와 싸우는 정당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당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대결’은 우리의 정책이 아니다.

조: 최근 시위 물결을 어떻게 부르는가? ‘항쟁(uprising)’인가 혹은 ‘소요(riot)’인가?

우: (웃으며) ‘항쟁’은 좀 과장된 거고.

(자리에 함께 한 사무국 간사가 ‘그냥 평화적 시위’라고 말했고, 대변인 한 타민과 인터뷰를 이어갔다)

조: 타이-버마 국경지대 무장투쟁 단체들은 군부가 평화적 시위조차 결코 수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번 시위사태가 보여주었고 무장투쟁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며 재정비하고 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한 타민 민족민주동맹 대변인

한 타민 민족민주동맹 대변인

한타민(이하 ‘한’) 우린 무장투쟁을 부인하고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거부한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다.

조: 이번에 망명 단체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인정하는지?

한: 단지 망명단체들뿐 아니라 한국인, 일본인 각국에서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주었다. 우린 매우 고무되었다.

조: 앞서 우 르윈 대변인에게 던진 질문의 반복인데, 최근 시위를 승려조직과 88세대 전 학생운동가들이 이끌도록 민주동맹은 왜 데모 한 번 조직하지 않았나?

한: 사태는 정부와 승려 사이에 발생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린 세속(Secular)정당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위사태가 발생할 때 지지성명서를 발표했다. 연행·구속된 이들 대부분도 민주동맹 열성 당원들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이 시위가 민주동맹 주도로 벌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88세대는 조직화에는 능하지만 합법성이 없다.

조: 열성당원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과 민주동맹이 시위를 이끌었다는 건 다르다. 나는 지금 민주동맹 지도부 역할, 특히 시위정국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그건 승려들이 주도한 것이고 그들은 우리의 종교적 상징이다. 우리 당은 종교적 코드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당원들과 지도부는 그 시위를 지지했으므로 민주동맹 리더십이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조: 지금 이 기회를 민주화 운동으로 바짝 밀어붙여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황금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나?

한: 이런 상황을 우리가 정치적 이익을 갖고 접근하면 안 된다.

조: 어쨌든 사태가 커졌고 이미 민주화 운동 수준에 이르지 않았는가? 기름값 인상이라는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했지만. 이럴 때 국제사회에 당신들의 민주화 열망을 더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우린 당의 정책과 열망을 시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명서를 통해 표현한다.

조: 죽이고, 계속 잡아가는데… 성명만 발표하는 건 지나치게 부드러운 방식 아닌가?

한: 그럼 우리가 뭘 해야 하나?

조: 뭐라도. 예를 들면, 왜 거리시위 한 번 조직하지 못하냐는 말이다.

한: 그랬다가는 우리를 죽일 텐데. 당신도 알다시피 외국 기자까지 죽이지 않았나. 우리가 거리에서 더 희생되어야 하나?
조 그게 민주화 운동의 험난한 역사 아닌가. 민주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한: 정책을 바꿀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 언제쯤인가?

한: 나도 잘 모른다.

조: 군 내부 분열상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탄 슈웨 장군이 총격 명령을 내린 반면 (2인자) 마웅에 장군은 반대했다는 설이 있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있는가?

한: 그런 추측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조: 초 강경파 탄 슈웨 장군과 다른 장군 간의 차이점이 있나?

한: 모두 강경파다. 차이가 없다.

조: 버마의 미래상은 어떤가? 무엇을 예측하나?

한: 탄 슈웨 장군과 (아웅산 수치 여사의) 대화를 희망하고 있다.

조: ‘대화’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궁금하다. 대화 다음에는 무엇이 있나?

한: 버마에는 여러 가지 이슈가 산적해 있다. 우린 탄 슈웨 장군과 아웅산 수치 여사의 대화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 민주동맹은 여전히 군부정권에 일정한 신뢰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우린 언제나 군의 역할을 인정해왔다. 우린 그들에 대한 신뢰를 일정하게는 유지해야 한다.

조: 민주화된 버마에서도 그런가?

한: 그렇다.

조: 내 말은 새롭게 구성된 군이 아니라 현재의 이 (잔인한) 군말이다.

한: 그렇다. 우린 이 군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 이 군사정권이 자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한: 아니다. 한 기관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리더십이 죽거나 또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이가 그 뒤를 이을 것이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양곤(버마)·칼라 조<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칼라 조는 해외교포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입니다.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을 사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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