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사꾼’ 툭 하면 ‘과잉 총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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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 ‘대행’하는 민간군사기업의 무고한 인명 살상행위 도마에 올라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블랙워터 단원들.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블랙워터 단원들.

지난 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호주의 민간군사기업(Privatized Military Company·PMC) 직원의 총격으로 여성 2명이 숨졌다. 지난달 16일 미국의 블랙워터USA가 이라크 민간인을 대량 사살한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PMC 직원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이 연달아 드러나면서 PMC 자체에 대한 제재도 요구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전쟁터에서 활동하는 PMC를 단속할 수 있는 법안을 지난 4일 통과시켰다.

PMC는 전쟁을 돈벌이로 보는 ‘죽음의 장사꾼’들이다. 1973년 미국이 징병제를 철폐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주로 특수부대나 첩보기관 출신으로 구성되는데 처음에는 경호와 물자수송 등을 맡아 민간경호업체로 분류됐다. 1980년대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 독재에 동원됐던 인력들이 만든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가 시초 격이다. 이 회사는 1991년 시에라리온에서 일어난 내란에서 반군을 몰아냈다. 또 서아프리카의 한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쿠데타를 꾀하기도 했다. PMC들은 1991년 걸프전에는 1만 명이 참전하는 등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 등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전쟁마다 끼어들어왔다.

‘살인면허’에 ‘면책특권’까지

냉전의 종식과 군축, 군사부문 민영화 등의 이유로 전직한 군인들이 ‘전쟁대행업’을 새로운 시장으로 본 것이다. 현재 수백 개의 PMC가 전 세계 50여개 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요인 경호, 군수물자 수송, 군사고문과 전투 등 정규군의 전 군사영역에 손을 뻗치고 있다.

전 세계 군비지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은 국방부가 1994년부터 현재까지 12개 PMC와 3000억 달러 규모의 계약 3601건을 체결했다고 한다. B2 스텔스 폭격기, F117 스텔스 전투기, KC10 공중급유기 등 전략무기의 유지·보수·관리를 민영화했다. 영국은 2001년 해군 항공지원부대, 육군 탱크운송부대, 공군 공중급유대 등을 민간에 이전시켰다. 심지어 핵잠수함 관리와 조종까지 맡겼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의 ‘국방개혁 2020’에는 보급·정비·인쇄·지도창·복지단 등 28개 지원부대를 아웃소싱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국가적 대의나 정의가 아닌 돈을 받고 무력을 파는 PMC는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민간인 살상을 비롯한 인권문제를 일으켜왔지만 제대로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 이번 블랙워터 사건이 전쟁 장사꾼들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경제적’으로 이라크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전쟁을 민영화했다는 말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이라크 공격 뒤 재건계획을 세우면서 ‘민간군수지원강화(LOGCAP)’ 프로그램을 내걸었다. 이라크 인프라 복구와 미군 지원 등 군사 분야의 다양한 영역을 민간업체에 넘겼다.

상이군인 치료비용보다 덜 들어

의회에서 증언하고 있는 블랙워터 지휘관 에릭 프린스.

의회에서 증언하고 있는 블랙워터 지휘관 에릭 프린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PMC는 60여개 사 10만여 명에 이른다.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제외하면 연합군 전체보다 많다.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만 2만~3만 명이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발포할 수 있는 ‘살인면허’를 갖고 있다. 바그다드 함락 직후인 2003년 6월 당시 폴 브레머 미 행정관이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민간기업을 이라크 사법기관이 처벌할 수 없다’는 훈령을 내리며 이들에게 ‘면책특권’을 줬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2006년 12월 술취한 블랙워터 직원이 이라크 부통령의 경호원을 사살했는데 사건을 덮었다. 리안 크로커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이라크 전쟁에서) 블랙워터와 같은 보호업체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발언할 정도다. 또 이라크 정부가 민간인 사살 사건을 이유로 블랙워터의 이라크 내 사업면허를 취소했지만 미 대사관은 지난 3일 폴란드 대사가 습격받자 사건 수습을 위해 블랙워터를 현장에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이들이 사살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블랙워터의 경우 2005년 이후 1주일에 1.4건 꼴로 총격을 가하며 197건의 총격사건에 연루됐다. 이중 80%가 블랙워터가 먼저 총격을 가한 것이라는 미 의회 조사 결과도 있다.

면책특권과 현 부시행정부를 든든한 뒷배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블랙워터 창업주 에릭 프린스는 지난 2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죽은 것은 전쟁의 안개 속에서 벌어진 사고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노다지를 캐고 있는 프린스는 기독교 보수파 재벌가문 출신으로 미 공화당 강경파가 추구하는 가치를 신봉하는 인물이다.

블랙워터와 같은 PMC들이 호황을 맞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금세기 들어 전쟁은 대부분 이권 때문에 일어난다. ‘거창한 대의’ 없이 전쟁을 수행하려면 정치적 부담을 덜고 최소 비용으로 수행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이라크전쟁으로 발생한 상이군인들을 수십 년 동안 치료하는 비용이 2조5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병사 한 명이 죽거나 다치면 의회나 국민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난다. 그러나 PMC를 고용하면 이런 ‘관리’가 필요 없다. 일당이 400~600달러 정도로 정규군보다 급여는 2~3배 높지만 여론의 사각지대에 있어 병력운용이 훨씬 용이하다.

엘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은 전적으로 석유에 관한 것”이라며 “자신이 전쟁을 지지한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현재 이라크 정부는 블랙워터 직원들의 면책특권을 부정하고 이들을 이라크 법정에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국 내에서 ‘영업’ 중인 최대 PMC인 블랙워터를 이라크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다. 이라크 내 PMC는 치외법권을 인정받아 이라크 정부의 의지가 과연 실현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세기 초 전설적인 무기상으로 알려진 바실 자하로프는 영국에서 가장 큰 무기제조회사 비커스 등에서 일하며 죽음을 팔아먹는 ‘죽음의 장사꾼’이라고 불렸다.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 러일전쟁, 발칸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 전쟁의 배후에는 그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는 연합군 등에 공급하는 탄약이나 포탄 등 군수품의 양을 조절해 전선을 고착시키는 등 수많은 사람의 피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그런 자하로프에게 영국은 기사 작위를 주고 프랑스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21세기 들어 부시 행정부도 PMC 활동을 규제하자는 목소리에 대해 “대테러전과 이라크 재건 작업 등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제부┃김주현 기자 amic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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