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인터넷을 타고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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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개봉한 영화 ‘향수’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를 만드는 데 미친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영화에서 향기가 좋은 사람들의 체취를 이용해 향수를 만든다.

영화 ‘향수’ 의 한 장면.

영화 ‘향수’ 의 한 장면.

타이어·휴대전화에 향기 입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 황제 카이사르와 장군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은 비결의 하나는 향수였다. 그녀는 남자를 유혹할 때 몸에 ‘시베트’라는 향수를 뿌렸다고 한다. 시베트는 사향고양이의 항문 가까이에 있는 분비선에서 나오는 기름 물질이다. 이 물질은 사향노루에서 나오는 사향과 비슷한데 사향은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활력이 넘치면서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향기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했다. 5000년 전 인도와 메소포타미아 지방 등에서 향유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고대인들은 향기를 종교의식에서 악령을 쫓거나 불안을 잠재우는 안정제로 사용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향 냄새는 명상할 때 마음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물론 중국의 양귀비 등 많은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무기로 향기를 사용했다.

현대에도 향기는 기분을 좋게 하는 것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향기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다. 정말 향기로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향기가 적어도 기분을 편안하게 하거나 즐겁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실험 결과 솔잎향은 상쾌하고 편안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향은 우리 몸을 긴장시키는 교감 신경을 안정시켜 편안한 상태로 만든다. 기억력을 높이는 향기도 있다. 독일 과학자들이 지난 3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잠을 잘 때 장미향을 맡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기억력 게임을 더 잘했다. 장미 향기를 맡은 학생들의 뇌에서 학습을 맡은 부분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밖에도 상큼한 레몬향은 잠을 깨우고 부드러운 라벤더향은 긴장을 풀어준다.

해로운 균을 죽이거나 공기를 정화하는 향도 있다. 숲에 가면 몸의 활력을 높이는 향기가 나는데 이것은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라는 물질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병균을 죽이거나 경쟁하는 나무를 공격하기 위해 내뿜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인간에게는 거꾸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향기도 있다.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선물했다고 하는 몰약은 구강염과 기관지염에 좋고, 코알라가 즐겨 먹는 유칼립투스는 호흡기 질환에 좋아 기침을 낫게 하는 캔디에 쓰인다. 제라늄꽃에서 나온 향유는 균의 번식을 억제해 호흡기 질환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이 향기들이 병 치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므로 향기에 지나치게 의존하지는 말자.

백화점이나 의상실에서 좋은 향기로 고객을 유혹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엔 향기와 전혀 상관없던 제품에서도 향기가 난다. 자동차 타이어나 휴대전화가 좋은 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는 빵 굽는 냄새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영화관에서는 마치 숲속에 와 있는 것처럼 편백나무 향이 풍겨 나온다. 싱가포르항공이 세계 최고 항공사라는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유명 향수회사의 도움을 얻어 기내에서 ‘스테판 플로리안 워터스’라는 매력적인 향기가 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승객들은 싱가포르항공의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향기에 반한다.

향기는 휘발성이 강해서 공기 중에서 쉽게 날아가는데다, 산소와 만나면 쉽게 변한다. 영화관이나 비행기는 그렇다 치고 휴대전화나 타이어 등은 어떻게 향기를 유지할까.

향기나는 제품은 사용방법이나 재료에 따라 향기를 입히는 방법이 다르다. 향기나는 양말이나 옷에는 향기를 캡슐로 싸서 넣는다. 향기분자를 아주 작고 얇은 막 안에 넣으면 신발을 신고 걷거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향기 캡슐이 터지면서 향기가 난다. 플라스틱에는 아로마 오일 형태로 향기분자가 들어간다. 향기분자를 기름에 녹여 재료와 섞는 것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전화를 받을 때 오일이 터지면서 향기가 난다.

일본선 향기나는 라디오 방송 시작

[과학이야기]향기는 인터넷을 타고 날아온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향기가 인터넷을 타고 날아가는 세상이다. 정보통신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미래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는 인터넷으로 향기를 전할 수 있다. 컴퓨터 화면에 커피 광고가 뜨면 달콤한 커피 냄새가 나고 향수 광고가 뜨면 고혹적인 향수 냄새가 나는 것이다. 또 각 거실에는 향기 정보를 디지털로 저장하는 디지털 조향기가 설치된다고 한다. 집안에는 늘 자신의 기분에 맞춘 향기가 가득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는 향기나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청취자가 라디오에 향기발생장치를 설치하면 음악이 나올 때 음악에 맞는 향기가 나온다. 아직은 향기가 미리 정해놓은 대로 나오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청취자의 감성에 더 어울리고 음악감상을 도와주는 향기가 나올 것이다.

더욱 멋진 세상을 상상해볼 수 없을까. 향기나는 라디오를 앞서 말한 인터넷 향기와 결합하면 TV 드라마, 영화, 인터넷 UCC 등도 향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입어도 냄새는커녕 옷을 입은 사람의 기분이나 장소에 따라 다양한 향기가 나는 옷부터 읽는 내용에 맞는 향기가 나는 책, 여름이면 바닷가 겨울이면 따뜻한 통나무집 냄새가 나는 사무실이나 자동차, 이국적인 냄새가 나는 거리 등도 언젠가 맛볼 향기로운 세상일 것이다. 가장 멋진 향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의 유전자와 뇌파를 분석해 그녀를 사로잡는 맞춤형 향기가 아닐까.

김상연〈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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