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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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에이즈에 걸린 어린 딸 ‘봄이’를 중심으로 감동적으로 전개되는 삶의 진솔한 이야기들은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20%를 눈앞에 두면서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홈페이지 게시판은 시청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모씨는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고맙습니다’란 말을 수십 번 반복해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새로운 치료제 개발 사망률 급감

의학적으로 보아서도 이 드라마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한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감염인협회 김현진 회장은 “자칫 잘못 하면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편견이 생길까 우려했지만 (에이즈) 감염인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말 그대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자문 역할을 맡았던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의 김훈수 사업국장도 “일상생활에서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짓으로 직접 보여줘 홍보를 위한 백 마디 말보다 높은 효과를 냈다”고 드라마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실제로 1980년대 초 미국 의사들이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Aquired Immuno Deficiency Syndrome, AIDS)에 대한 보고서를 처음 발표했을 때, 에이즈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불치의 병이었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적당한 면역물질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1996년 에이즈 바이러스를 죽이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에이즈에 전염된 후 면역결핍증, 또는 합병증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계속 줄어들었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김은수 국장은 “환자가 2~3개월 기간을 두고 정기적인 진료와 치료를 받으면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10~20년까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약이란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하지 않도록 그 기능을 억제하는 물질을 말한다. 이들은 바이러스가 세포 유전자로 침입하는 데 필수적인 ‘역전사 효소’와 ‘바이러스 단백질 분해효소’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역전사 효소를 공격하는 치료제를 ‘역전사효소 억제제’, 단백질 분해효소를 공격하는 치료제를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라고 부르며 ‘역전사효소 억제제’는 다시 뉴클레오사이드 계열과 비뉴클레오사이드 계열로 분류한다. 바이러스가 인체세포 내에서 복제되는 과정을 보면 분자량이 큰 단백질을 만든 후 이를 잘게 절단하여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데, 단백질을 잘게 절단하지 못하면 불량 바이러스가 만들어져 바이러스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란 커다란 단백질을 바이러스 복제에 필요한 작은 단백질로 절단해주는 단백분해효소를 억제함으로써 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내는 약제다.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는 기존의 역전사효소 억제제보다 항바이러스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약제는 단독으로 사용하면 바이러스로부터 강한 내성이 발현되기 때문에 한 가지 이상의 역전사효소 억제제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두 가지의 역전사효소 억제제와 한 가지의 단백분해효소 억제제를 병용하는 경우 치료효과가 상승해 99% 이상의 바이러스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에이즈정보센터의 설명이다.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란 HIV, 즉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AIDS 바이러스)가 인체 면역세포 내에 침투한 후에 바이러스의 RNA가 DNA로 변환하는 데 필요한 역전사효소를 억제시킴으로써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약제다. 완전 치료제라기보다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여 수명 연장이나 에이즈로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약제라고 할 수 있다.

비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 역시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와 같은 역전사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지만 방법이 매우 다르다. HIV-1에 대한 치료효과가 매우 높은 것이 장점. 그러나 양쪽 모두 단독으로 사용하면 바이러스 측에서 약제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약제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는 2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 FDA에서 공인한 에이즈 치료제는 15종으로 집계된다.

수십 년간 건강하게 사회활동 가능

뉴클레오사이드 계열의 역전사효소 억제제에는 ‘지도부딘(Zidovudine, AZT)’, ‘디다노신(Didanosine, ddI)’, ‘잘시타빈(Zalcitabine, ddC)’, ‘스타부딘(Stavudine, d4T)’, ‘라미부딘(Lamivudine, 3TC)’ 등이, 비뉴클레오사이드 계열의 역전사효소 억제제에는 ‘바이라문(Viramune, Nevirapine)’, ‘레스크립터(Rescriptor, Delavirdine)’, ‘스톡크린(Stocrin, Efavirenz)’등이, 단백분해효소 억제제에는 ‘인비라제(Invirase, Saquinavir)’, ‘크릭시반(Crixivan, Indinavir)’, ‘노르비어(Norvir, Ritonavir)’, ‘비라셉트(Viracept, Nelfinavir)’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이중 6~7종류의 치료제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 큰 관심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침투를 부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전 세계 과학자들은 에이즈 바이러스 증식 과정에서 부착(Adsorption), 융합(Fusion), 탈막(Uncoating), 끼여들기(Integration)와 같은 단계를 차단하는 계열의 약제들을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키모킨 리셉터 블로커(Chemokine receptor blockers)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부착을 막아 인체세포 내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약제이며, 인터그레이스 인히비터(Integrase Inhibitors)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DNA가 인체세포 내의 핵에 있는 염색체로 끼어들기를 막는 역할을 하는 약제이다. 또한 에이즈 바이러스의 융합을 막는 약제,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물질(genome) 부분의 역할을 차단하는 약제, 에이즈 바이러스의 생활사 중 삼중 나선형을 막는 약제와 환원효소(ribonucleotide reductase) 등을 연구 중이며, 에이즈 바이러스의 DNA합성 억제제 및 에이즈 바이러스 백신 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애런 다이아몬드 에이즈 연구소장인 데이비드 호 박사는 “에이즈는 당뇨, 고혈압처럼 약물로 조절이 가능한 질환일 뿐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최근 약제를 혼합해 투약하는 칵테일 요법 등 치료법의 향상으로 에이즈 사망률이 과거보다 현저히 감소한 데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지원으로 에이즈 관련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에이즈정보센터 관계자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 RNA의 수를 낮게 유지하면서 에이즈로 진행을 수십 년간 지연시킨다면 에이즈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자기의 수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당뇨병 환자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을 막기 위해 혈당을 엄격히 조절하듯이 에이즈 감염자도 RNA수를 엄격히 조절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 최근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에는 약효가 약효가 훨씬 더 좋은 에이즈 치료제 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지금보다 더 탁월한 효과를 가진 약제들을 개발하면서 불치의 병으로 알려졌던 에이즈 퇴치의 길도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

이강봉〈사이언스타임즈 편집위원〉 aacc4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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