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12편의 영화를 동시에 본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요즘 우리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뛰어다닌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모습들이 길에 설치된 CCTV에 녹화되기도 한다. 가끔은 사건사고의 현장분석용 자료로 CCTV에 녹화됐던 화면들을 TV나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보안용 CCTV에서 제공하는 화면에 나타나는 영상들은, 녹화 당시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지만, 우리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의 TV나 영화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우리 눈으로 직접 보는 수준에는 결코 미칠 수 없다.

망막이 보낸 부분 정보, 뇌가 종합해

안구의 작동원리

안구의 작동원리

흔히 눈의 기능을 카메라에 비유한다. 수정체인 렌즈와 필름인 망막의 관계다. 수정체를 통과한 모든 빛의 정보가 망막에 전달되고 이것을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과학자들은 망막의 정보가 뇌에 전달되는 과정에 대한 재미있는 새로운 이론들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2명의 과학자가(프랭크 베르블린, 브톤드 로스카) 사람의 망막과 아주 비슷한 토끼의 망막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망막은 안구 내부에서 빛을 상당한 정도로 정보처리한 후 일련의 부분적인 정보를 뇌로 보내며, 뇌가 종합하도록 한다.

망막 깊숙한 곳에 자리한 특화된 신경세포 또는 뉴런이 각각 별도로 처리한 추상화된 시각적인 세계를 수십 개의 영화 트랙으로 투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망막이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서 뇌로 실어 보내는 영상 중에서, 각각의 트랙은 한 가지 특정한 영상만 만들어 보낸다. 예를 들자면 한 트랙은 사물의 가장자리만 자세하게 보여주는 영상을 전달한다. 또 다른 트랙은 그림자나 하이라이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앞서 두 과학자는 12개의 트랙이 각기 다른 영상을 분류 전송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트랙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시신경 내부의 섬유를 통해 신호를 발신해서 뇌 속의 시각중추로 보내고, 시각중추에서는 이를 더 세밀하게 처리한다.

인간의 청각신경도 이와 유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청각신경은 매우 폭이 좁은 영역의 음만 전달하고 뇌에서 그 음들이 종합된다. 시각령(Visual Cortex)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운동, 색채, 깊이, 형태 등과 같은 특징들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그 특징을 처리하는 영역이 손상되면 그 부분의 능력이 결여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뇌의 그러한 능력도 결국에는 망막의 12개의 영화 트랙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12개의 영화 트랙이 뇌에 전송된다는 것은, 뇌가 12편의 영화를 받아서 시각적 세계를 분석한다는 것이다. 망막에 맺히고 분류된 상들은 천연의 시각적 언어를 형성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과학자들의 임무다.

인공센서 삽입 시각장애 복구 시도

세계 곳곳의 연구진이 시신경 바로 앞에 인공센서를 삽입함으로써 망막을 대체해 시각장애인들의 시각능력을 복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이들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시각의 자연언어를 통합시켜 망막이 처리하는 것과 흡사한 패턴을 뇌에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는 각각의 추상화된 상을 시신경 안의 적절한 섬유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망막 안에 형성된 시각의 자연언어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와 함께 우리의 눈과 귀가 어떻게 협동하여 사물을 정확히 보는지, 어떻게 해서 착시를 일으키는지, 어떻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를 추적해갈 수 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망막 자체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망막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망막을 하나의 영화 트랙과 관련하여 간단히 설명을 한다면, 우선 망막에서 흡수한 빛은, 빛을 신경활동으로 변환시키는 광수용체인 양극세포에 전달된다. 양극세포의 신호는 뉴런을 통해서 신경절세포체에 전달된다. 양극세포의 영상정보를 제어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것을 무축삭세포라고 부른다. 이 작고 다양한 뉴런들이 양극세포의 영상정보를 제어하는 신호를 신경절세포체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경절세포체에서 가공된 영상은 한 편의 영화 트랙이 되어서 시신경에 전달된다. 이들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러한 신경절세포체가 12개의 유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쉴새없이 일하는 우리의 눈

쉴새없이 일하는 우리의 눈

3차원 공간 속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찰된다. 무색의 3차원 공간 속에서 정지된 검은 점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만들어진다. 망막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점을 계속 보기 때문이다. 각 유형의 많은 신경절세포가 망막 안에 들어 있고, 각 유형의 신경절세포가 모인 집합이 각각의 영화를 전달한다. 그러나 한 프레임씩 만들어지는 실제 영화와는 달리 신경절세포의 영화는 연속적인 신호의 흐름이다.

신경절세포의 각 집합이 동시에 읽어내는 양극세포와 무축삭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이 우리의 시각적인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받아들이는 데이터를 구성한다. 우리가 글을 읽고, 사물의 형태를 파악하고, 얼굴을 구분하고, 걸어다니는 동안, 우리 뇌가 받아들이는 유일한 시각적 단서가 바로 이러한 12편의 영화의 조합인 것이다. 이 조합들이 시각의 신경언어 단위를 구체화하는 고유의 문장구조와 문법을 가진 기초적인 시각언어를 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12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영화는 실제에 대한 근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안구 맨 안쪽에 있는, 종이보다 얇은 신경조직이 시각적인 세계를 10여 개의 분절적인 요소로 분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요소들은 온전한 형태로 서로 분리되어 다른 뇌의 영역에 전달된다. 오늘날의 신경과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러한 정보의 패킷을 뇌가 어떻게 해석하여 웅장하고 거침없는 현실 세계의 영상들을 만들어내느냐를 이해하는 것이다.

박성근〈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사이언스 올제 발행인〉

과학이야기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