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원동력은 ‘암흑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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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세월이 점점 빨리 가는 것을 느끼지만, 또한 점점 새로운 것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도 느낀다. 특히 인터넷, 휴대전화를 비롯한 정보통신, 반도체, 나노 등의 분야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암흑에너지는 우주 탄생과 더불어 태초부터 우주에 가득 차 있다. <NASA 제공>

암흑에너지는 우주 탄생과 더불어 태초부터 우주에 가득 차 있다.

반면 기초과학분야의 발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원래 학문의 성격이 그렇다. 그런데도 최근에 몇몇 가설은 빠른 속도로 과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소개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암흑 에너지(dark energy)’이다. 아마 독자 여러분 중에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분도 있을 것이다. 공통점은 이 두 개 모두 천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흑에너지는 암흑물질과는 다른 것이다.

필자가 암흑에너지란 말 자체를 처음 들었던 때는 1998년쯤이다. 암흑에너지라니 무슨 소린가. 어둠에 무슨 빛 에너지가 있단 말인가. 이는 ‘하얀 밤을 지새웠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그 당시 에너지 보존법칙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었는데 혹시 무슨 사이비 이론을 누가 전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스러움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주 구성물질의 4분의 3 차지

암흑에너지는 이미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우주에 가득 차 있었는데 우리는 불과 10년 전에서야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의 4분의 3이 바로 이 암흑에너지라는 것이다. 에너지와 물질의 관계는 아인슈타인이 이미 1905년에 특수상대성 이론의 그 유명한 공식 E=Mc2을 통해서 물질이 곧 에너지이고 에너지가 물질이라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이 암흑에너지를 직접 검출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21세기에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이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암흑에너지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별과 은하 그리고 은하단이 만들어지고 변해가는 모든 과정이 암흑에너지의 개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암흑에너지가 만든 작품을 천체에서 감상하고 있는 셈이다.

천문학자 허블은 은하들이 빠른 속력으로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멀어지는 속력은 거리에 비례한다.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는 더 빠른 속력으로 멀어진다. 이것을, 은하들이 공간 속을 이동해 간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은하들이 들어있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기 때문에, 팽창하는 공간에 실려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이러한 팽창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얼마 정도 팽창하다가 멈출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상식적인 답은 ‘멀어져가던 은하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중력에 의해서 팽창 속력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팽창 속력을 오랜 시간 동안 측정하여 팽창 속력이 변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연구 과제로 되어왔다. 오랜 관측을 통해서 드디어 팽창 속력이 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증거는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과 관련된 것이다. 물이 흐르는 수면만 바라보며 속도를 측정하는 것보다 물 위에 버들잎이라도 띄워놓고 그 잎이 흐르는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 쉬운 것과 같이 초신성의 엄청난 폭발이 우주팽창의 측정에 표식자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이러한 관측을 통해서 밝혀낸 사실은 우주팽창이 과거에는 오늘날보다 느렸으며 점차 가속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팽창이 잠시 느려졌다가 어느 시점에 전환기를 겪고 나서부터 다시 가속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다. 이러한 발견은 별도로 추진된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검증된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윌킨슨 극초단파 비등방성 탐사선이 우주의 극초단파 배경복사선을 연구한 결과에서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의 중력법칙으론 설명 안돼

허블 우주망원경에 포착된 130억 년 전 초기 은하의 모습. <경향신문>

허블 우주망원경에 포착된 130억 년 전 초기 은하의 모습. <경향신문>

가속팽창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은 초은하 규모에서는 작은 규모에서 적용되는 보통의 중력법칙이 아닌 특별한 다른 중력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하들 상호간에 작용하는 중력이 우주팽창에 큰 저항을 하지 않고, 이에 따라 우주가 팽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력의 법칙인 만유인력의 법칙이 보편적인 법칙인데 이 법칙을 수정하면서까지 팽창을 설명하는 것에 동조하는 과학자들은 많지 않다.

새로운 가설이지만 빠른 속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어떤 형태의 에너지가 은하끼리 잡아당기는 인력보다 더 큰 힘으로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줄다리기 시합을 생각하면 이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쪽에는 우주의 물질 간의 당기는 힘이 되는 중력이 버티고 있고 그 반대 편에는 우주 팽창에 영향을 주는 암흑에너지가 버티고 있는 꼴이다. 이 두 선수 중 어느 한 쪽도 상대방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못하다. 필자가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 팽팽한 접전인 경우에 끌려가기도 하고 끌어오기도 하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던 것이 생각난다. 만약 암흑에너지가 현재보다 더 강했다면, 팽창이 이겨서 우주의 물질들은 집중되는 대신에 많이 퍼졌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별들의 생성에 필요한 물질들이 충분치 못해서 별 생성률이 줄어들고 우주에서 기체 상태로 남아 있는 중입자형 물질의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또 은하 합체가 일어나는 일도 드물어져 거대 은하와 은하단도 더 적어졌을 것이다.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무거운 원소의 생성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따라서 오늘날의 자연의 모습과 매우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 암흑에너지가 더 약했다면, 물질이 지금보다 더 집중되었을 것이다. 은하들로 구성된 대규모 구조물들은 좀더 단단히 속박되었을 것이고 은하들의 합체와 몸집 불리기가 더 많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암흑에너지는 생명에 유익한 것 같다. 가속 팽창을 하니까 우주가 수축해서 붕괴할 것이라는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또한 위험도 있다. 이렇게 팽창만 하다가는 우주가 점차 빈 공간이 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암흑에너지는 중력과 반대의 작용을 하면서 우주를 키워온 원동력인 셈이다.

박성근〈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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