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핵은 중국견제 전술용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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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협력 협정 체결한 미국의 ‘이중잣대’ 속셈… 국제사회 원칙 무시한 자국 이기주의?

미국 부시 대통령과 인도 싱 총리가 양국 간의 핵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 부시 대통령과 인도 싱 총리가 양국 간의 핵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았다. 1974년 5월 첫 핵실험을 했고, 깜짝 놀란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1998년 핵탄두 실험을 또 다시 실시, 결국 핵무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식사찰 없이 30여 년을 꿋꿋이 버텼다. 인도의 얘기다.

이 뚝심의 핵정책이 지난 3월 2일 미국과 핵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결실을 맺으며 국제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다. 인도와 비슷한 경로로 핵무장을 시도하는 북한이나 이란에 대해서는 채찍을 벼르는 미국이 인구 10억 인도의 거대한 경제와 영향력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실상 핵무장 국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변칙이 불가피할 정도로 절박했던 미국의 사정은 무엇일까.

핵협정, 무엇을 담고 있나 미국-인도 간 핵협력 협정은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지난해 7월 방미했을 당시 미국이 꺼내든 선물보따리였다. 군용 핵과 민수용 핵을 분리, 민수용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을 허용한다면 미국의 핵기술과 연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기존 핵탄두 등 군용핵을 사찰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인도를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 국제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인도에만 ‘예외적인 지위’를 선언한 데 대해 비난론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사설을 통해 “지난 35년 간 여러 나라의 핵무장을 단념시켜온 NPT체제의 당근과 채찍이란 접근방식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했다.

핵사찰 범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인도는 22개의 원자로 중 총 12개를 사찰대상인 민간 핵시설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당장은 4개지만 앞으로 12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해 양국간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고속 증식로도 개방하기로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용과 민수용 핵의 구분기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세종연구소의 이상현 연구위원은 “미국이 인도에 판매하게 될 핵기술은 군사 및 민간용 양쪽으로 다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인도가 이런 기술과 원료·장비를 이용해 핵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은 막지 않고 있다”고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NPT체제를 감시하는 IAEA는 “양국간 합의는 국제핵사찰의 보편화를 위한 중요한 단계”라며 미국과 인도의 손을 들어주고 나섰다. 상황이야 어찌됐든 30년간 핵사찰 무풍지대였던 인도의 빗장을 푼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주장이다. 북한과 이란은 당장 ‘이중잣대’라며 발끈했다. 리철 북한 제네바대표부 대사는 “핵보유국들이 자체 핵무기는 보존·강화하면서 타국의 핵활동을 견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반면 인도의 핵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지아 대학 국제무역안보연구소의 시마 갈라우트는 포린폴리시 인터넷판 기고에서 “이미 핵무기가 있고 민수용 핵이 가동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핵협정을 포기한다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1974년 포크란 사막에서 실시한 인도의 첫 핵실험.

1974년 포크란 사막에서 실시한 인도의 첫 핵실험.

중국 견제의 공통목적 핵협정은 미국과 인도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통된 필요성에서 나왔다.
인도는 수천㎞에 이르는 방대한 산악지역을 중국과 국경으로 맞댄 채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4월 전략적인 협력관계 구축에 합의했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라이벌 관계다. 두 거대한 개발도상국은 향후 21세기에 세계경제의 패권국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중국이 좀더 앞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로서는 초조할 따름이다. 이에 인도가 견제세력으로 미국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경제성장을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공급 안정 차원에서 현재 1.7%에 불과한 원자력 발전 의존도를 늘려나가는 것도 장기적으로 인도 경제에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 내부에서 미국의 핵시설 및 기술이 도입될 경우 자체 핵연구가 약화 또는 중단될 수 있다며 반발했음에도 싱 총리가 협정을 밀어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으로서도 인도는 2050년이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경제국으로 부상할 중국을 견제할 최적의 파트너다. 더군다나 ‘중국-러시아-인도’로 이어지는 삼각동맹의 형성을 미리 견제할 수 있다. 미국은 이란 핵문제를 비롯해 민주주의, 에너지정책 등을 놓고 중국·러시아 정부와 씨름을 벌여왔다. 특히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급속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중·러 양국이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조직하며 미국을 견제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갈등수위는 점진적으로 고조돼왔다. 여기에 인도마저 힘을 보탤 경우 미국으로서는 현 일극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상당한 비용을 희생해야 할 처지였다.

미국과 인도는 이번 핵협정을 시작으로 경제·과학 등 많은 분야에서 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268억 달러 가량의 양국간 무역규모를 향후 3년간 500억 달러로 늘린다는 데 합의했다. 인도는 2008년 발사예정인 무인 달탐사선과 관련,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지원받고 올해 안에 미국과 경제투자에 대한 회담을 개최하기로 약속했다.

중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은 양국의 핵협력 선언 직후 “미국과 인도의 핵에너지 협력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근거해야 한다”며 경계했다. 하지만 ‘인도-미국’ 대 ‘중국-러시아’의 대립구도가 굳어질 가능성을 섣불리 언급하기는 이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실리지향적인 ‘줄타기 외교’를 구사해왔다. 미국과의 근거리 외교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더 많은 실리적 양보를 얻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국이 핵협정을 축하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협정이 공식효력을 가지려면 NPT 미가입국과 핵거래를 금지하는 미국 원자력 개정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그런데 미 의회 내부에서는 인도에만 핵기술을 제공하면 북한과 이란 등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45개국으로 구성된 핵공급그룹(NSG)을 설득, 인도에 핵물질 및 시설제공을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치는 문제도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핵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인도와 핵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어 전망이 밝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하지만 인도 하나를 위해서 국제사회가 핵원칙을 통째로 흔드는 현 상황은 핵무기 개발 및 보유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회피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국제부/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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