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뻗어가는 일본 ‘이태백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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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숙소에만 머물며 백수생활… 돈 떨어지면 귀국해 돈 벌어 다시 나가

최근 일본에 이색적인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족’이 등장했다. 해외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거나 장기체재를 하면서 관광도 않고 하루 종일 만화를 읽거나 숙소에만 머물러 있는 이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민간교류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일본인이나 외국인 여행자들과 어울리기만 한다.

이들이 처음부터 ‘해외 이태백’이 된 것은 아니다. 회사원 시절에 해외여행을 다니다가 갑자기 여유없는 일본 생활에 염증을 느낀 경우가 태반이다. 이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중에 발견한 곳으로 돌아와 관광도 하지 않고 머문다. 일본인이 많이 찾는 게스트하우스 인근에는 통신기술의 발달로 만화방·PC방 등이 있어 그리 적적하지 않다. 또한 날마다 같은 ‘해외 이태백’들끼리 모여서 술자리를 갖는 게 그들의 최대 이벤트라고 입을 모은다. 술을 좋아하던 이태백이 들으면 좋아할 일이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일본으로 돌아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마련해 다시 해외로 나간다. 물론 ‘해외 이태백’ 생활이 가능한 데에는 일본의 높은 인건비와 엔고가 있다. ‘해외 이태백’의 평균 연봉은 100만 엔 정도다.

긍정적 사고로 장래 불안감 떨쳐

공무원이던 ㄱ씨는 ‘해외 이태백’ 경력 3년째. 그는 이집트의 카이로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선 30만 엔만 있으면 1년을 지낼 수 있다. ㄴ씨는 대학생 시절 해외여행을 시작했고 졸업 후 취업을 하지 않고 프리터의 길을 택했다. ‘해외 이태백’ 경력 5년째인 그는 하루 종일 기타를 치는 일로 소일한다. 드물게 레이스퀸 출신인 ㄷ씨는 낮 12시쯤에 기상해 오후 5시쯤 게스트하우스 멤버들과 술자리를 시작하고 새벽 3시쯤에 하루 일정을 마친다. 모두 장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세대들이라 밝고 긍정적인 면모를 보인다.

태국의 카오산, 캄보디아의 슈무리업, 인도의 바라나시, 네팔의 포카라가 ‘해외 이태백’ 족의 4대 성지라고 한다. 이런 ‘해외 이태백’ 외에도 오키나와에도 외지에서 온 ‘이태백’이 최근 급증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력이 필요한 사회적 성공보다 아예 편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특성”이라며 “우연한 기회에 해외의 편안한 장소를 발견한 이들이 국내에서 구박받느니 ‘해외 이태백’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 이태백’은 그래도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으니 정서적으로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해외 이태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런 ‘해외 이태백’을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살기 편하도록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유럽처럼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족의 공동화를 메우고 젊은이들이 설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으로 연금을 받고 해외이민 생활을 택하는 일본의 부모세대와 최근 들어 급증하는 ‘해외 이태백’족은 같은 듯하면서도 무척 대조적이다.

<도쿄/이수지 통신원 buddy-su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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