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현의 그림처럼 세월호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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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은 왜 구조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까. 9시39분쯤 1분1초가 아까운 시간에 해경본청은 123정 대원들에게 휴대폰으로 현장 영상을 찍어서 카톡으로 송신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에서 VIP 보고용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26일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행렬 사이로 고래가 나타났다. 세종대로를 메운 촛불 위로 아이들을 태운 고래가 날아오르는 그림(석정현 작)을 재현한 것이다. 그림처럼 세월호가 올라왔다. 304명의 목숨과 함께 가라앉은 지 1073일 만이다.

기억 속의 세월호는 파란 선수만 겨우 물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이다. 아직 침몰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에어포켓이 존재할 것이라고, 희망이 있다고, 지금이라도 제발 빨리 구해 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구조 책임자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아무도 더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9명은 죽어서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촛불 행렬과 고래 위에 올라탄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석정현 작가의 일러스트. / 석정현 작가

촛불 행렬과 고래 위에 올라탄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석정현 작가의 일러스트. / 석정현 작가

보고용 영상 찍느라 정신 팔린 해경

2014년 4월 16일 아침 8시49분 진도VTS 관제모니터 속의 세월호는 오른쪽으로 크게 돌았다가 사라졌다. 정상적으로 관제사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기관고장이나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변칙 근무 때문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8시52분부터 승객과 선원들이 경찰청과 119상황실에 수차례 사고 발생 사실을 알렸지만, 해경은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배의 위치를 알리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대응을 하거나 선내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운영규칙에는 사고 신고 접수요원은 해경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신고전화를 끊지 말고 질문을 계속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담당 상황관은 다른 전화를 받느라 깜빡했다면서 신고자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해경, 소방본부 사이에서는 신고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고, 구조에 나선 해경 헬기의 조종사는 세월호의 탑승객 수도, 승객들이 배 안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무작정 출동했다고 증언했다. 현장지휘함 해경 123정은 9시34분쯤 현장에 도착해 조타실에서 선장, 선원들을 구조한 것 외에는 선체 진입도, 퇴선명령도 하지 않은 채 자발적으로 탈출한 사람만을 실어 날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경은 도착한 지 45분이 지나기도 전인 10시15분 구조 철수 보고를 했고, 10시18분 구조 중인 어선들에게도 철수명령을 하고 접근을 막았다. 세월호와 함께 침몰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해경이 구조를 포기한 순간에도 어선들은 해경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월호에 이물을 들이대 승객들을 끄집어냈다. 살아 나온 아이들은 무기력했던 해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해경은 왜 구조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까. 9시39분쯤 1분1초가 아까운 시간에 해경본청은 123정 대원들에게 휴대폰으로 현장 영상을 찍어서 카톡으로 송신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에서 VIP 보고용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10시9분, 10시11분, 10시15분에도 계속 영상을 독촉했고, 실제로 123정장, 항해팀장, 행정팀장의 휴대폰에는 그 시각 수차례의 인터넷 접속 기록이 존재한다. 청와대의 요구로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보낸 흔적일 것이다. 9시43분쯤 한 승객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3층 안내데스크 근처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 있다. 몇 미터 앞의 출입문은 열려 있었지만 여전히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이 나오고, 누군가가 움직이면 승객들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서 안전히 구조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123정장이 현장에 도착해서라도 바로 퇴선명령을 했다면 그들은 즉시 배를 빠져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동한 해경 중 누구도 그들을 들여다보거나 빨리 빠져 나오라고 고함조차 지르지 않았다. 9시50분쯤 점점 물이 차오르자 승객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탈출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후였다. 현장구조책임자 123정장은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되어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었다. 법적으로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부실 구조가 승객 사망의 원인이라고 인정된 것이다. 정장이 보고용 영상을 찍어 보내느라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면, 퇴선명령을 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구조를 뒷전으로 하고 찍어 보낸 영상은 VIP에게 제대로 보고되었을까. 국가안보실은 9시24분 청와대의 주요 직위자에게 사고 발생 사실을 알렸고, 9시10분 해경 중앙구조본부, 9시39분 국방부 재난대책본부, 9시40분 안전행정부 중앙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되었다. 해양수산부는 9시40분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했지만, 대통령은 탄핵심판 사건에서 서면보고를 받은 10시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았다면 서면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미 해경 123정이 구조를 포기한 10시15분에서야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0시25분 청와대-해경본청 상황실 핫라인 녹취록에는 “VIP 메시지 전해드릴 테니까 빨리 전해 주세요.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냥 적어. 그 다음에 여객선 내에 객실, 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 가지고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해라 그 두 가지를 말씀하셨으니까 일단 청장님에게 메모로 넣어드리고”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미 세월호가 전복되고 나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적으라고까지 하는 청와대 직원의 모습은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씨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그린 일러스트. / 석정현 작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씨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그린 일러스트. / 석정현 작가

청와대, 보고서 작성하느라 시간 낭비

대통령은 14시50분쯤에서야 인명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명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침에 올림머리를 흐트러뜨리기 위하여 미용사를 부른 것이었고, 실제로 중대본에 나타난 시간은 17시15분, 대통령의 관저와 중대본은 차로 10분 거리에 불과하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한시라도 빨리 구조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는 제 얼굴이었던 게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의 보충의견에서, 탄핵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상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했다.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며 가족들을 모욕하고 조롱했던 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으리라.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대법원에서 선체 결함이 사고 원인일 가능성을 인정하였으므로, 인양 없이는 사고 원인 규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석정현이 그린 또 하나의 그림에는 아이들과 고인이 된 신해철이 등장한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 고통도 두려움도 없는 그 곳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가족들의 싸움이 끝나야 아이들도 마음 놓지 않을까.

<최윤수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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