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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어제’를 보라

“지금 왜 갑자기 ‘서울의 봄’인가.”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을 계기로 저마다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최근 관련해서 인상 깊은 비평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유희석 전남대 교수(영문학)의 ‘영화 <서울의 봄>을 곱씹어 보는 일’이었는데요.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지 못한 회한, 지금도 반복되는 불의, 어둡기만 한 앞날에서 오는 좌절 등 분석은 다른 글과 대동소이했지만 한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군부독재에 반대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민주화 세력이 시대적 소명과 본연의 역할에 소홀한 나머지 검찰독재가 들어설 빌미를 제공한 측면은 없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는 취지의 일침이었는데요. 그 대목에 이르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군요.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아닐까.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성찰해야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역사의 과오를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거슬러 올라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도대체 ‘정치군인’은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왔을까. 본분을 잊고 선을 넘어버린 일부 ‘청년장교’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1차적 원인이겠지요. 그런 집단적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6·25전쟁을 겪으면서 민족의 명운을 군대라는 집단에 맡겨야 했던 외생 변수가 큰 몫을 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극한의 상황에 이르렀을까. 나라는 왜 둘로 갈라져 버렸을까.

지금 ‘정치검사’들은 또 왜 갑자기 물 만난 고기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걸까. 군부의 위상이 추락한 틈을 타 법조인들이 신흥 권력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지 꽤 됐지요. 그 시점은 공교롭게도 민주화 이행 시기와 맞물립니다. 이후로 줄곧 판·검사·변호사들의 여의도 입성이 물결을 이뤘고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고 타협점을 모색해야 할 정치는 본분을 잊고 공방만 일삼다가 종국에는 너도나도 서초동으로 달려갑니다. ‘정치의 사법화’ 현상입니다. 툭하면 시시비비 가려달라, 이것 좀 수사해달라 달려드는 정치권이 법조인들 눈에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습니까. ‘조국 사태’는 그 결정판이었고요. 검찰과 뒤엉켜 진흙탕을 구르는 정치권의 모습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습니다.

보고 싶은 부분만 봐서는 곤란합니다. 현상 대신 본질을, 오늘 말고 어제까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양당정치를 끝내고 제3지대라는 ‘빅텐트’를 치겠다는 세력이 최근 불쑥 수면 위로 끌어올린 ‘병역 성평등’과 ‘남성 육아휴직 전면화’ 의제도 그렇습니다. 하루 이틀 곪은 문제가 아니지요. 저출생, 혐오, 은둔고립 청년 급증 등 사회 제반 현상과 맞물려 있는 메가톤급 이슈입니다. 당장 후폭풍이 만만찮습니다. 역사적 연원을 제대로 살펴 섬세하고도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갈등만 부추길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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