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지방시대 종합계획, 희망고문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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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14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14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10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은 지역발전의 청사진을 담았다. 종합계획은 기간을 2023년에서 2027년까지 5년으로 두고 서울부터 세종까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지향하는 각 지역의 미래 모습과 실천과제를 담고 있다. 종합계획은 5년 단위의 법정계획이다. 연원으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으로 지방분권 계획과 국가균형발전 계획을 별도로 수립했다. 이번에는 이들 두 계획을 통합해 하나로 하면서 ‘제1차’ 계획으로 지칭하게 됐다. 정부 계획의 연속성 측면에서는 제5차 계획에 해당한다. 120쪽에 이르는 본문에는 광역지자체별로 비전과 전략 그리고 향후 5년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가 정리돼 있고, 마지막에는 지방시대 5년 후 미래상이 제시돼 있다. 먼저 17개 시·도가 표방하는 비전을 보자.

동행과 매력의 균형도시 서울,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빅 드림 부산, 신공항 중심의 미래신산업 도시 파워풀 대구,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 내일이 기대되는 행복한 기회 도시 광주, 담대한 꿈을 현실로 일류경제도시 대전,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 울산을 다시 울산답게,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전략수도로 도약하는 세종, 손잡고 나아가는 기회의 경기, 새로운 출발! 미래산업 글로벌도시 강원특별자치도!, 중부내륙시대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중심 희망 충북, 대한민국 성장과 나눔을 선도하는 힘쎈 충남!, 함께 혁신 지방시대 함께 성공 글로벌 생명경제도시 전북, 세계로 웅비하는 대도약! 전남 행복시대, 지역소멸을 극복한 최초의 지방정부 경상북도, 모두가 꿈꾼 미래 우주시대를 여는 경남, 위대한 도민시대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

종합계획에 담긴 지자체의 비전

17개 시·도의 비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행복’과 ‘미래’다. 각각 네 번씩이다. 함의가 유사한 ‘기회’, ‘동행’, ‘나눔’을 합치면 모두 열두 지자체의 비전이 삶의 질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편 ‘경제’, ‘산업’, ‘성장’, ‘혁신’ 등 발전 관련 단어는 모두 여섯 지자체의 비전에 들어 있다. 지자체의 비전만 보면 이들이 경제발전보다는 행복한 미래, 기회와 나눔 등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몇몇 시·도별 비전에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여본다. 대구의 비전은 ‘신공항 중심의 미래신산업 도시’인데, 미래신산업을 위해 신공항이 정말 중심이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역의 숙원사업을 비전으로 제시한 대구시의 상상력 빈곤에 한숨이 나온다. ‘지역소멸을 극복한 최초의 지방정부, 경상북도’도 상상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지역의 절박함이 담겨 있어 가슴이 아프다. 전국 여러 곳에서 지역소멸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 절박함을 경상북도는 비전에 담았다. ‘일류경제도시 대전’은 당황스럽다. 일류도시가 비전이라니 지금은 일류가 아닌 이류 또는 삼류 도시임을 자인하는 꼴인데, 대전시민으로서 몹시 불쾌하다. 대전의 자산인 ‘과학’은 어디로 갔나. 비전으로서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례는 서울과 제주다. 군더더기를 빼고 ‘동행과 매력의 서울’과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면서 해외의 유수한 글로벌 메가시티에 견줄 만하다. 관광, 문화, 휴식이 있는 매력도시를 지향하는 비전에 서울시민뿐 아니라 세계 시민들도 공감할 것이다.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는 미래비전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제주의 자연환경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담았다.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곳이라면 가서 살고 싶다.

우동기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10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동기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10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합계획에는 비전과 목표 다음에 시·도별로 5대 전략별 역점과제, 성과지표 그리고 공간발전구상을 요약해 수록했다. 종합계획은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반도체, 바이오헬스, 인공지능(AI), 첨단 모빌리티, 도심항공교통(UAM) 등 산업과 기술의 최신 유행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화려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중앙부처가 시행하는 사업들이 지역별로 배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은 (지원 대상이 아닌)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시·도의 역점과제로 제시돼 있다. 인재 육성에서는 지역의 특색은 보이지 않고, 중앙정부의 큰 정책 하나가 지배적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큰 정책뿐 아니라 종합계획에 명시적으로 서술돼 있지 않지만 작은 정책들도 중앙정부가 기획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 지역 정책의 실정이다. 지방시대 종합계획에서조차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 사업의 집행기관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종합계획의 마지막에는 지방시대 5년 후 미래상이 세 가지로 제시돼 있다. “양질의 신규 일자리와 청년인구가 늘어난다”는 미래상에선 현재 17%인 지식기반산업 일자리가 2027년에 20%로 늘어나고, 같은 기간에 지방 청년인구는 45%에서 50%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지방대학이 지역혁신과 인재양성의 산실이 된다”에서는 지방대 졸업생의 권역 내 취업률을 52%로 유지하고 지역혁신을 선도하는 글로컬 대학 30곳을 육성하겠다고 약속한다. “농·어촌과 도시가 상생 발전한다”에서는 귀농·귀어·귀촌 인구 추가 확대와 체류형 생활인구를 늘릴 것을 약속한다. 이들 미래상 중에서 지식기반산업 일자리 비중과 글로컬 대학 30개교 육성은 달성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반면, 지방 청년인구 50%는 가장 어려운 목표로 보인다. 앞의 두 목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정 등 자원투입을 이미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든 만들어 낼 것이다. 반면 지방 청년인구를 50%로 늘리는 과제는 본질적으로 정부의 재정투입과 사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현재 일자리와 가족 삶의 환경, 미래 전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주민들과 협의해 보완해야

지방시대 종합계획이 정부 문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를 열어가는 장기 지침으로의 역할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보완과 조정이 필요하다. 종합계획이 행정가들의 탁상공론이 되지 않도록 주민들과의 협의를 계속해 나가면서 계획에 반영하는 상향식 접근이 필요하다. 비전으로 걸맞지 않은 경우, 과제로서 효과를 상실한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무의미한 경우 등이라면 이를 반영해 수정해 나가야 한다. 많은 사례 중에 하나를 언급한다. 여러 지자체가 국제공항 건설을 비전, 목표 또는 역점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한반도 남쪽에는 이미 여덟 개의 국제공항이 있다. 이것으로도 부족한 이유를 행정당국에 묻는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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