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한국인 통근시간 73분 ‘평균값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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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9호선 객차가 출근길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 지하철 9호선 객차가 출근길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직장인 대부분은 하루의 일정 시간을 통근에 사용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21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직장인은 통근에 하루평균 73분(2023년 6월 기준)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12만명 근로자의 이동통신 자료를 분석한 이 조사는 지역별로 통근시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경기·인천을 포괄하는 수도권은 83분으로, 통근시간이 가장 길다. 반면 강원권 직장인은 52분이 통근에 소요돼 광역권 중에서는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근시간에 관한 데이터는 여러 함의를 제공한다. 개인은 집과 직장 사이의 거리에 따라 통근 수단을 선택한다. 아주 가까우면 걸어갈 수 있고, 대중교통이 잘 구비돼 있으면 버스나 전철 또는 기차를 이용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가용을 선택할 것이다. 도시계획에서 주거지역과 사무 및 상업지역을 어떻게 배치하고 연결할 것인가는 계획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통근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도심과 주변, 권역 간을 연결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번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는 SK텔레콤의 통신자료를 이용해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발표 자료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이 정도 규모의 빅데이터라면 교통수단별, 소득별 그리고 보다 상세한 (예를 들어 기초지자체 단위보다 더 하위의) 지역별 통근 소요시간도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 OECD 최장 통근시간

사람들이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즉 이동수단과 소요시간에 대한 조사연구는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진행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1974년 미국 교통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자하비’ 보고서다. 이스라엘 출신의 교통공학자 야코브 자하비(Yacov Jahavi)는 미국 22개 도시의 자동차 이동 패턴을 조사했다. 그는 도시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동시간의 총량은 도시별로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하비는 이동시간의 총량을 이동 횟수와 1회당 이동시간의 곱으로 파악했다. 이동시간 총량이 일정하다는 것은 이동 횟수와 1회당 이동시간 사이의 관계가 반비례적이라는 뜻이다. ‘이동시간 총량은 일정하다’는 가설을 설정하면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멀리 나가서 살게 되는, 따라서 도시가 팽창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자하비 보고서에서 영감을 받은 이탈리아 물리학자 체사레 마르체티(Cesare Marchetti)는 아테네나 베를린 같은 도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조사했다. 베를린의 경계를 도심에서 반경으로 측정하면 1800년경에는 2.5㎞에서 1950년대에는 약 20㎞로 확장됐는데, 이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이루어졌다. 1800년경의 주된 교통수단은 도보였으므로 반경 2.5㎞를 왕복하면 한 시간이 걸린다. 20세기 후반에는 자동차가 주된 교통수단으로 등장했는데, 자동차를 이용하면 20㎞ 거리를 왕복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기술발전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교통수단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면서 한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도 늘어났다. 여기에 맞춰 베를린의 경우 통근 한 시간에 해당하는 도시의 경계도 확장됐다는 것이다. 마르체티의 1994년 논문을 계기로 통근시간이 대체로 한 시간으로 일정한 현상을 ‘마르체티 상수’라 부르게 됐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출근길 시민들 /권도현 기자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출근길 시민들 /권도현 기자

통근시간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자하비 가설이나 통근시간은 한 시간 내외라는 마르체티 상수는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까. 자하비 가설과 마르체티 상수는 평균값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이들은 국가 차원의 평균에서는 기준이 될 수 있지만, 동일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평균값으로는 실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평균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평균으로서 통근시간 한 시간이라는 기준은 대체로 많은 국가에 적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의 통근시간은 한 시간 이내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은 1시간 50분으로 파악돼 OECD에서 최장시간을 기록했다. 한국 외에 통근에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 나라는 일본, 영국, 멕시코 등이었다.

캐나다 맥길대는 인간시간프로젝트(Human Chronome Project)를 통해 58개 국가에서 자료를 수집해 인류 전체의 시간 사용 내역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하루 24시간 중에서 ‘이동’에 투입되는 시간의 인류 전체 평균값은 54분이다. 여기에서 이동은 직장인의 통근뿐 아니라 여행과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 등을 모두 대상으로 했다. 평균값은 54분이지만 국가별로 이동시간을 보면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의 이동시간은 97분으로 세계 평균보다 43분이 더 많다. 참고로 미국 58분, 일본 64분, 중국 58분, 독일 58분, 프랑스 56분 등으로 한국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망 확충에도 수도권 집중 가속화

한국은 어떤 데이터를 봐도 국제기준보다 통근 또는 이동에 시간이 아주 많이 소요되는 나라다. 왜 그럴까. 국토의 면적이 작고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일까. 유사한 조건인 네덜란드의 경우는 인간시간프로젝트에서 이동시간이 63분으로 조사돼 한국보다 현저하게 낮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통계청의 이번 조사 결과에서 부분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한국의 통근시간이 매우 높은 것은 수도권 지역의 통근시간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조사에서 수도권 이외 지역의 통근시간은 60분 수준이거나 이하다. 수도권이 83분으로 현저하게 높아 전체 평균이 76시간으로 높게 나온다. ‘통근시간 한 시간’ 기준으로 보면 한국 전체가 아웃라이어(평균 범주를 벗어난 이상치)가 아니라 수도권이 아웃라이어이다.

수도권 지역에 교통망을 더 확충하면 통근시간은 얼마나 줄어들까. 이론적으로 새로운 교통망은 통근시간 축소와 도시 경계 확대라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도시발전의 역사를 보면, 교통망 확충의 효과는 통근시간 축소보다는 도시 팽창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한국의 수도권이 대표적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교통망이 현저하게 개선됐지만, 통근시간은 줄지 않고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지속되고 있다. 일자리와 교육 등에서 수도권의 입지 우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망 확충에도 한국의 수도권은 여전히 아웃라이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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