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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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이동관이 가고 김홍일이 왔습니다. 이해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방송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단체, 야당까지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보란듯이 ‘이동관 카드’를 밀어붙이더니 정작 그는 취임 불과 98일 만에 자진 사퇴해버렸습니다. 원 포인트 릴리프(특정 한 타자만 상대하기 위해 등판하는 구원투수)처럼 ‘방송장악’이라는 폭투를 제대로 뿌리고 마운드를 내려간 선수를 현 정권이 벤치에 계속해서 앉혀두지는 않을 것이고, 야인으로 돌아간 그의 다음 역할이 뭐가 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다음 계투 선수가 등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검 중수2과장 시절 직속상관이었던 대검 중앙수사부장 출신의 김홍일입니다. 출범 때부터 검사독재, 검찰공화국 오명을 뒤집어쓰고 흘러온 정권인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까지 ‘특수통 칼잡이’를 조직 수장으로 앉히는 단계에 이르렀네요. 적임자가 다 고사를 했든, 인재풀이 빈약하든, 믿을 집단은 검사뿐이라고 생각하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건 아니지요. 가뜩이나 총선을 앞두고 검사 출신들을 지역구로 내리꽂는다는 소문에 여권 내에서도 잡음이 무성한 시기 아닙니까.

세간의 화제작 <서울의 봄> 얘기를 좀 해볼까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한참 동안 스크린을 떠날 수 없었다는 감상평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누가 자꾸 떠올라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부터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저리도 흡사한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시선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풍자합니다. 저도 한 숟가락 얹어볼까요. ‘역사는 돌고 돈다’, 제가 내린 한 줄 평입니다.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군부 장기독재. 2인자 김종필을 비롯한 정치군인의 득세는 10월 유신을 거쳐 더욱 노골화됩니다. 궁정동에 울린 총성과 함께 오는가 싶던 서울의 봄은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의 등장으로 한없이 미뤄졌고요. 그후로도 한참 동안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비롯한 군인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척결이 촉매제가 돼 군부의 위상은 비로소 급전직하합니다. 본분을 잊고 정치에 개입한 선배 군인들 때문에 후배 군인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른 셈이지요.

누가 뭐래도 지금 최고 권력집단은 검사입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자부심과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일군의 ‘정치검사’들이 흡사 그때 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보가 훗날 검찰조직 전반에 어떤 치명상을 입힐지 역사가 증명하는데도 멈출 줄을 모릅니다. 선택적 정의, 무소불위 검찰, 법조 카르텔 등 조롱과 비아냥은 커져만 갑니다. 검찰조직 자체가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묵묵히 본분에 충실한 검사들로선 맥이 빠질 노릇입니다.

훗날 언젠가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또 불편한 과거를 회상해야 하는 불상사가 더 이상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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