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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보면 서얼 출신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설움이 오죽했겠습니까. 홍길동은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반기를 들고 신분제 중심의 기존 질서를 혁파하겠다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조선 사회를 헤집어놓습니다. 민중 사이에선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500여 년의 세월이 지나 도탄에 빠진 한국 정치를 구해보겠다며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인물이 있습니다. 도하 각 언론이 ‘푸른 눈의 한국인 의사’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입니다.

[편집실에서]홍길동과 인요한

지난 10월 23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평소에도 통화를 매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도, 절친도 매일 통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연인 사이라도 불꽃처럼 타오르던 초기를 지나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통화 횟수가 줄어듭니다. 얼마나 가까운 사이길래? 자연스러운 의문이죠. 갖가지 해석과 전망이 부담스러웠는지 김한길 위원장이 공식 해명을 내놓습니다. “방송하면서 알게 된 지 4~5년 됐지만, 그동안 4~5번 정도 안부 전화를 주고받은 게 전부다”.

둘의 얘기가 이렇게 다릅니다. 기자들이 인 위원장을 붙잡고 어떻게 된 거냐 묻죠. 얼버무립니다.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맞다 틀리다 한마디면 되는데 그걸 은근슬쩍 피해갑니다. 통화 몇 번 한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한 정보라고 기자들과 줄다리기를 합니다. 얼마나 자주 통화하는지, 얼마나 가까운지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신세라니 총선을 앞두고 장차 국민의힘을 “와이프와 아이 빼고” 싹 다 바꿔놓겠다는 혁신위원장치고는 너무 궁색하지 않습니까. 과장이나 허풍이었다면 잇단 설화의 예고편일 것이고, 사실이라면 훗날 주워 담아야 할 만큼 민감한 사안인지 아닌지조차 제대로 분별해내지 못하는 정무감각 부족의 방증일 것입니다.

다음날 출근길에는 “(김한길) 대표님 말씀대로 네댓 번 통화했고, 과거 다 합쳐봐야 그것밖에 안 된다”고 이전 자신의 발언을 강력 부인합니다. 본격 닻을 올린 혁신위의 핵심은 ‘전권’입니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 시절 인수위 부위원장을 지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는 DJ라고 말합니다. 5·18민주묘지를 찾고, 박정희 추도식을 찾는 식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닌다고 민심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대로 대통령실과 당이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려면 공천부터 전권을 쥐고 흔들 수 있어야 합니다. 홍길동의 율도국은 결국 현실에는 없는 이상향이었고, 그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허균의 사회저항 의식과 혁신 의지는 한때 그를 총애하던 광해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처럼 그의 메스도 정말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날카롭고도 성공적으로 환부를 도려낼 수 있을까요.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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