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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번 버스를 타고 벽산평창힐스아파트 정류장에 내렸습니다. 한눈에 봐도 경사가 장난이 아닌 서울 종로구 평창동 언덕길을 10여 분쯤 걸어올라가니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이윽고 평지가 나오고, 고즈넉한 주택가 뒤편으로 북한산 형제봉이 절경을 드러냅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100m쯤 걸어가니 ‘영인문학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대의 지성’으로 불린 이어령(李御寧·1933~2022) 선생의 영(寧) 자와 문학평론가인 배우자 강인숙(姜仁淑·1933~ ) 건국대 명예교수의 인(仁) 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영인문학관은 이들 부부가 사재를 들여 설립한 ‘개인 박물관’입니다. 지하 1층과 2층에 소장 예술품과 사료 가치가 있는 문학 잡지 등을 중심으로 상설 전시관을 운영 중이고, 촉망받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도 틈틈이 선보입니다. 지상 1층은 이어령·강인숙 부부가 먹고 자며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지상 2층엔 이어령 선생의 서재가 있습니다. 책을 읽고, 집필하는 집무실인 동시에 동료·후배 문인, 예술가들과 만나 시대와 민족, 문화를 주제로 교류하고 담소를 나누던 ‘사랑방’ 역할도 겸하던 곳입니다. 이곳이 한시적으로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지난해 2월 작고한 남편의 혼이 깃든 서재를 정리하던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의 결심이 배경이 됐다고 합니다. 문학관 관계자는 “관람객들이 선생의 살아생전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평소 서재의 모습에서 특별히 꾸미거나 더 보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책상을 빙 둘러가며 나란히 서 있는 7대의 컴퓨터(왕성한 호기심과 창작열의 상징이죠), 포스트잇이 붙은 채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량의 서적(종류별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습에서 정리의 달인 풍모를 느꼈습니다), 평생 교류한 문인·예술가들로부터 받은 기념품(시시콜콜한 물건들까지 버리지 않고 부부가 함께 메모를 붙여 모두 모아뒀더군요) 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서재 한켠에는 위암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한 맏딸 고 이민아(1959~2012) 목사의 사진과 유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편집실에서]아름다운 퇴장

자녀를 앞세운 아비의 심정이었을까요. 고인은 항암치료를 거부했습니다. 서재에 놓인 휠체어와 그가 영면에 든 1인용 침대 주위로 수북이 쌓인 약봉지와 링거 주사기 등이 고인이 겪었을 육체적 고통을 짐작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 줄이라도 더 쓰겠다며 새벽을 밝혔습니다. 최근 별세한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 또한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 사실을 공개하며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노라 선언했지요. 한 줄이라도 더 긋겠다고 SNS에 적고는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고요.

고인이 가장 좋아했다는 문학관 정원 건너편 소나무와 2층 서재에 난 창 너머로 저 멀리 펼쳐진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퇴장’을 떠올렸습니다. 모 장관 후보자가 거의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해버린 직후여서 더 만감이 교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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