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재정준칙 이제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학생 단체 신전대협이 지난 4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 완화 법안 통과에 대해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학생 단체 신전대협이 지난 4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 완화 법안 통과에 대해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랜만에 인근 천변을 새벽에 산책했습니다. 신록의 맑은 공기가 생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출근길에 접한 뉴스는 다시 오늘을 어제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19 창궐, 부동산가격 급등락, 사회양극화 심화, 국제분쟁 격화 등 적응하기 힘든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격동의 흐름 속에서 생긴 문제들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적절한 대응은 못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정치권이 경제 주체들의 급격한 부채 증가 문제에 대해 무시하거나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되기까지 합니다.

급속도로 불어난 국가 빚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영업난에 따른 자금 수요, 주택가격 급등에 놀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증가 등에 따라 민간부채가 크게 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재정확장으로 국가채무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국제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4.3%로 세계 주요 37개국 중 1위이며, 가계부채가 GDP보다 높은 유일한 나라라고 합니다. 집값의 급등에 놀라 영끌로 대출받아 주택을 샀다가 순식간의 집값 급락으로 채무원금과 매월 이자 부담을 짊어지게 된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의 일상은 지옥과 같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어떤 해결책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꼭 올 거라는 위로 같지도 않은 말밖에는 해줄 게 없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정치권에서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어떤 정책도 제시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국가채무(일반정부 부채)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e-나라지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조세/GDP)은 22.1%입니다. 2020년 기준 OECD 38개국 평균조세부담률 24.3% 대비 다소 낮은 수준입니다. 세금은 쉽게 늘어나지도 않고 늘릴 수도 없습니다. 정부는 최근 3년 동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매년 100조원이 훨씬 넘는 추가 지출을 해왔습니다. 세금으로는 충당할 수 없어 국가가 빚을 지게 됐습니다.

지난 4월 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당해 국가채무가 1067조70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2018년에 680조5000억원이었으니 5년 만에 500조원이 늘어난 셈입니다.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듯합니다. 늘어난 국가채무로 인해 올해 세금으로 갚아야 할 이자비용이 22조9130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급속한 채무와 이자 부담의 증가는 국가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나라경제를 책임진 공무원들의 심정이 영끌해 집을 산 젊은 세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최근 선진국들은 코로나19로 방만하게 운영하던 재정을 정상화하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누적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입니다. 재정건전성이 심하게 무너지면 그 여파가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재정의 경기변동 대응능력마저 상실되면서 최악의 경우 국가 부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만 재정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도덕적 해이’라는 최악의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분별한 현금 살포는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많은 사람을 도덕적 해이라는 바이러스에 노출시켜 국가의 지원만 바라는 좀비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잠재적 위험 때문에 선진 각국은 코로나19 비상시국이 끝나가자 즉시 정책 방향을 재정 안정화로 선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 완화와 재정준칙을 함께 처리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 완화와 재정준칙을 함께 처리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 연합뉴스

아침 뉴스를 보니 우리 정치권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그들에게 재정 정상화는 고려 대상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사안에서 격렬하게 대립하던 여야가 너무나도 쉽게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기준금액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국민 눈에는 내년 총선 대비 지역 챙기기나 인기영합적 개발사업을 염두에 둔 무책임한 야합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여론에 밀려 입법화가 무산됐습니다. 그러나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생각하면 그들이 재정을 방만하게 할 포퓰리즘성 법안을 앞으로도 계속 내놓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가 앞으로 한국의 나랏빚 증가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재정 모니터는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우리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이 53.2%에서 69.7%로 16.5%포인트 높아지리라 보고 있습니다. IMF가 분석한 주요 35개국 중 증가율이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국가 장래 위해 정치권이 논의해야

이런 모든 상황은 방만한 재정 운영을 차단하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해 나가는 데 필요한 재정준칙을 서둘러 도입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재정준칙은 간단히 말해 법으로 정부가 지출하는 돈의 한도를 미리 정해놓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의적이고 방만한 재정 운용에 제약을 가할 수 있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난 정부인 2020년 10월에 이미 재정준칙 법제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여야 의견 차이로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재 입법 추진 중인 재정준칙 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한도 비율을 2% 이내로 조정하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구체적 수치와 시행 시기의 세부 조정이 있겠지만,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재정준칙 법제화의 필요성과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재정준칙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논의에 임해야 합니다. 신속하고 진정성 있게 법안을 심의해 통과시켜야 합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재정 파탄의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미래세대에 빚 폭탄을 물려주는 일입니다. 재정준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갈 미래세대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침 뉴스를 보며 어두워졌던 마음이 다시 환해질 수 있도록 이른 시일 내에 국회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봅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조정목의 함께하는 세상(稅上) 이야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