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복지제도를 뛰어넘는 기부문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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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작가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을 읽어본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우동가게 주인이 가난한 세 모자에게 베풀어주는 따뜻한 사랑과 배려의 이야기지요. 살을 에듯이 추운 어느 해 섣달그믐날 밤 허름한 옷차림의 부인이 어린 두 아들과 함께 ‘북해정’이란 우동집에 들어와 우동 1인분을 시킵니다. 세 모자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가게 주인이 우동 1인분을 더 담아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후 매년 섣달그믐날 밤이 되면 가난한 세 모자는 이곳을 찾았고, 주인은 1년 중 가장 바쁜 날임에도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 따뜻하게 챙겨줍니다. 세 모자가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별도의 식탁까지 마련해 두었답니다. 그러다 세 모자의 방문이 끊기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장성한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부축하고 다시 북해정을 찾아와 이제는 우동 3인분을 시킵니다. 그리고 북해정 주인의 따뜻한 인심과 격려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돼서 성공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논란이 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조금 신파조지만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잘살게 된 것에 비해 마음은 더 각박한 요즈음 우리가 꼭 다시 읽어보면 좋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지난 2020년 3월 11일 울산시 남구는 익명의 주민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직접 만든 면 마스크 120장을 수암동행정복지센터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지난 2020년 3월 11일 울산시 남구는 익명의 주민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직접 만든 면 마스크 120장을 수암동행정복지센터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사회적 약자 돕는 공동체 만들어야

유교에서는 인간 본성을 네 가지(四端)로 보고 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 중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장 먼저 내세웁니다. 타인의 어려움에 함께 아파하고 배려하는 마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이런 측은지심 같은 고귀한 인간의 본성이 언제부턴가 물질과 경쟁에 가려서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잘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온갖 고난을 몸으로 겪어낸 조부모 세대의 헌신적 희생과 그 자녀들인 베이비붐 세대의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압축성장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입니다. 우크라이나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한강의 기적’이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잘살게 된 것만큼 마음도 풍요로워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장의 고속열차에서 이탈하고 뒤처져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가난하게만 살아왔던 터라 ‘한번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에서 배태된 물질적 욕망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본성을 흐리게 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선진 각국은 질병, 사고, 실업, 노후 등으로 발생하는 사회 약자를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이념 아래 ‘복지국가’로 진화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압축 성장한 경제 기반 위에서 어느 정도의 복지제도를 구축했습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힘든 사람들을 지원하는 복지제도를 더욱 확대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이념과 정치 투쟁의 결과인 현대 국가의 복지제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싶습니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가려져 있던 우리 내면의 측은지심을 잘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지나는 사람이나 힘든 동네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적선하던 우리 선조의 훌륭한 DNA를 끌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배려로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이런 소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기대해 봅니다.

아쉽게도 우리 기부문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2년 영국 자선지원재단(CFA)의 세계기부지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지수가 세계 119개국 중 88위라고 합니다. 하위권에 놓여 있습니다. 국세청과 미국 비영리단체인 기빙 USA(Giving USA) 등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최근 20년간 우리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금 비율은 0.6~0.8%로, 1.9~2.2%인 미국에 비해 많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외의 기부지수인 ‘자원봉사’와 ‘낯선 사람에게 도움 제공’ 순위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물론 기부지수를 평가하는 방법을 검토해 순위선정의 합리성에 이견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우리 기부문화가 우리나라의 위상과 비교해 열악하므로 보다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는 자세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직원들이 지난 5월 2일 사내 산책길에 설치된 나눔키오스크에 모바일 사원증을 태깅하며 기부에 참여하는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직원들이 지난 5월 2일 사내 산책길에 설치된 나눔키오스크에 모바일 사원증을 태깅하며 기부에 참여하는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지도층의 자발적 기여 확산돼야

물론 지금처럼 경쟁이 심하고 물질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기부문화 활성화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과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우리 사회는 사려 깊은 지도층의 더 많은 자발적 기여를 요구합니다. 이들의 솔선수범이 불러올 반향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간단체와 기업의 자율적 참여 증가도 공동체 구성원의 공감과 배려를 활성화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어릴 때부터 기부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교육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첨단기술을 잘 활용하는 아이디어 발굴도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국내 굴지의 회사에서 5월 가정의 달을 ‘나눔의 달’로 정하고 첨단기기를 활용한 나눔(기부) 캠페인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키오스크 화면에 회사가 후원하는 아동의 사연을 띄워주고 사원증을 갖다 대면 1000원씩 기부되도록 해 어려운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참신한 이벤트였습니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보았던 대형마트 계산대의 디지털식 기부 권유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사회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고 가족이 해체되며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미래사회에서 더 요구되는 덕목인 듯합니다. 개체화된 사회에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고 잠시 눈물짓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공감과 배려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일으켜 세워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잘 활성화된 기부문화는 이런 사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회자본입니다.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는 이런 사회자본이 많을 때 구현 가능해집니다. 우리 사회가 ‘복지제도’라는 인공의 빛과 ‘활성화된 기부문화’라는 자연 햇살로 더 환하고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우리나라 세계기부지수 순위와 키오스크 기부 관련 기사를 읽고 꾸며본 단상입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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