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노인정책과 자기 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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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저는 예순 살, 환갑이 됩니다. 굽이굽이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은데 돌아보니 지난 세월이 금방입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형님이 모시고 계신 노모를 뵈러 부산에 갔습니다. 올해 94세인 어머니는 거동이 힘들어 주로 집에만 계십니다. 지난 열흘 동안은 몸이 편찮으셔서 누워만 계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하룻밤만 함께 지내고 다시 일상의 삶이 있는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스마트폰에 저장해둔 노모의 사진을 보면서 그동안 보살핌만 받고 살아온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12년 전입니다. 아버지께서 낙상해 병원에 입원하고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돌봐드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부산에서 평판이 좋다는 요양병원을 찾아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그 후 형님은 틈만 나면 그곳에 찾아가 정성껏 보살펴 드렸지만, 아버지는 5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어이없이 세상을 놓아버린 아버지를 보고 형님은 크게 상심했습니다. 그래서 거동이 불편한 노모는 계속 모시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저는 형님 내외분께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초고령사회와 노인정책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고령(65세 이상) 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해 왔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70년에 고령인구수는 91만명이었고, 전체인구의 3.1%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2000년에는 339만명, 7.2%로 증가해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그로부터 18년 뒤인 2018년에는 736만명, 14.3%로 늘어 고령사회가 됐습니다. 다시 7년 후인 2025년에는 고령 인구수가 1058만명으로 늘어나고 전체인구의 20.6%가 돼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른 고령인구의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늙어가는 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대비를 요구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세대에 성취한 의학·보건의 눈부신 발전은 많은 사람에게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늦추는 큰 축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40대에 며칠을 앓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60대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도 80대 초반까지 생존하셔서 할아버지 수명의 두 배를 누리셨습니다. 이런 수명 연장은 그러나 많은 숙제도 함께 던져주었습니다. 통계청 ‘2020년 생명표’에 따르면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평균 17년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기간만큼 건강하지 못한 말년을 보낸다는 것이지요. 결국 어르신들에겐 늘어난 노년을 어떻게 잘 보내고 삶을 마감해야 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문제가, 우리에게는 그 기간만큼 더 오래 어르신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고령인구 모두가 여생을 건강하게 원하는 대로 살다가 가족의 품에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최첨단 의료·보건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고, 가족구조도 핵가족으로 급속히 변하면서 이런 소망스러운 삶과 죽음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우리가 대면하게 된 노년의 삶과 고독한 죽음은 개인이나 가족만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숙제가 된 것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현대국가는 고령인구 증가를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적극 대응 중입니다. 북유럽 국가를 포함한 선진 각국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노인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들보다 선진경제로의 진입은 늦고, 고령사회화 속도는 훨씬 빨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최근 들어 우리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인문제에 대처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노인대책을 수립해오던 정부는 2021년부터 제4차 5개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국가주도 인구정책에서 사람중심 복지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습니다. ‘삶의 질 제고’를 기본으로 하면서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하는 정책을 집행한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올바른 방향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된 노인정책의 세부내용을 살펴보니 건강하고 능동적인 고령사회 구축이라는 목표와 함께 5가지 주요 정책이 균형 있게 잘 제시돼 있었습니다. 정책수립과 집행계획 마련을 위해 많이 고민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정책 자료 중에서 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것은 ‘노후를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의 삶을 결정해 나갈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늙어가면서 능력은 줄어들고 삶의 폭도 좁아지는데 외부의 간섭으로 자율권마저 침해된다면 자존감을 잃고 상실감이 더 커질 것입니다. 보호라는 명목 아래 어르신들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게 된다면 그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의로 추진한 정부 정책이 어르신들 삶의 자율권을 제한하고 예상 못 한 굴욕감까지 주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노후를 보낼 수 있게 지원한다는 문구에 특별히 눈이 간 이유입니다.

노년의 삶과 자율권

모든 것은 포기하면 끝이 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가신 후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셨는지 의문입니다. 그곳의 관리통제, 수월한 간호를 위한 약물치료 등이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오던 일상을 앗아가자 무력해지면서 삶을 포기하신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해봅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당신 뜻대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거동은 어려워도 별다른 간섭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약 없이 자신이 많은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며 그것이 존중받기에 어머니에겐 여전히 삶의 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와의 동행이 더 오래 계속될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행히 화요일 아침에 어머니께서 기력을 회복하셨다는 형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노년 삶의 질은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커지는 무력감을 잘 이겨내며 살아갈 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 5개년 계획에 포함된 경제적 지원, 사회연대 구축, 시스템 강화와 같은 노인정책이 어르신들의 자기 결정권을 잘 반영하면서 추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조정목 세무사·세무법인 광화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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