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잦아지는 산불, 대안은 간벌과 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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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에 발생한 울진 산불은 213시간 동안 주택 319채를 포함 산림 약 2만㏊(6000만평)를 단숨에 집어삼킴으로써 그 규모와 기간에서 기록을 세웠다. 날이 갈수록 대형화되는 산불이 지구 온난화의 상징이고, 산불 예방이 곧 지구를 구하는 일이라며 여기저기서 목청을 높인 지 1년이 지났다. 올해도 여전히 산불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불은 반세기 넘게 가꿔온 숲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산불의 피해 규모를 줄이고 발생 빈도를 낮출 수 있는 좀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일까.

간벌 등을 통해 잘 관리된 숲(왼쪽)과 방치된 숲의 비교 모습 / 신유근 소장 제공

간벌 등을 통해 잘 관리된 숲(왼쪽)과 방치된 숲의 비교 모습 / 신유근 소장 제공

산불의 원인과 해법을 본격적으로 찾기 전에 미국 산림청 홈페이지(2022년 3월 2일 발표)에 소개된 관련 자료를 잠시 살펴볼까 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무성하고 촘촘하게 자란 숲이 미국 서부지역 산불 발생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며, 산불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미국 산림청은 간벌(솎아주기)을 제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스테이니슬라우스-투얼룸니 실험숲에서 비교연구를 수행한 태평양남서부연구소의 생태학자인 에릭 크냅은 “10년의 조사와 관찰 결과 간벌이 가뭄과 산불 이후 숲의 회복력과 동식물 다양성 및 생태계 개선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공림이 대부분인 한국, 솎아베기는 필수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에 비해 인공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1973년 740만㎥에 지나지 않던 입목 축적량이 2021년 10억㎥를 초과했다. 숲속에 살아 있는 나무의 양이 48년 만에 135배나 증가했다. 지금 우리 눈앞에 135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산에 딱 1그루의 나무만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것이 바로 50년 전 우리나라 산의 모습이었다. 이는 1973년 시작돼 20여년 동안 전개된 치산녹화 사업을 통해 사람들이 엄청난 규모로 나무를 심고 가꾸고, 벌채를 규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산림 이용도가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짧은 기간에 걸쳐 인위적 노력으로 조성한 숲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적당한 간격으로 솎아주지 않으면 나무들이 콩나물시루와 같은 경쟁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죽는 나무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들도 활력을 잃고, 차츰 시들시들해져 간다. 산림 조사를 위해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공간 부족으로 숲의 건강성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가는 현상을 공통적으로 발견한다. 멀리서 보면 푸른 산이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죽은 나무들 천지다. 우리나라 숲이 최근 10년 사이에 새롭게 직면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혹자는 숲과 자연은 높은 지능이 있어 스스로의 길을 찾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숲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숲은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멸 수준으로 파괴된 뒤, 전국적으로 벌인 대규모 산림녹화 사업을 통해 짧은 시간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인공림이거나 인공림에서 씨가 퍼져나가 형성된 2차림이다. 자연에 대한 막연한 믿음으로 병들고, 불타 죽어가는 숲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수령 40~50년의 나무들이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특정 나잇대에 기형적으로 편중된 게 우리의 숲이다. 동년배 나무 간의 과열 경쟁으로 죽은 나무의 양이 늘면서 하층에는 햇빛이 들지 않아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고 말라간다. 죽은 나무로 인해 마른 연료가 산속에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상승하며 강한 바람까지 불면 산불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산불은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원료 물질인 연료, 연소 공기인 바람의 양에 따라 커지고 물(수분)이 공급되면 불의 힘은 약해진다. 건조한 기후와 강한 바람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렵다. 산속에 쌓인 연료의 양은 우리의 힘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길을 내고 수거해 산 밖으로 빼내면 된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다. 산불 발생 시 초기 단계에 임도를 통해 빠르게 접근하면 물 공급을 늘릴 수도 있다. 이 역시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부분이다. 5~10㎞ 간격으로 설치돼 있는 임도의 밀도를 오스트리아처럼 200m 간격으로 높인다면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소방차 호스를 통한 초기 진화가 가능해진다.

솎아내기 후 건강하게 자란 숲(왼쪽)과 그렇지 않은 숲의 내부 상태 비교 / 신유근 소장 제공

솎아내기 후 건강하게 자란 숲(왼쪽)과 그렇지 않은 숲의 내부 상태 비교 / 신유근 소장 제공

임도 건설과 간벌을 동시에 전개해야 산불 예방능력을 키우려면 간벌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간벌한 나무를 반드시 수집해 산지의 외부로 끌어내야 한다. 우리나라는 매년 약 3000억의 예산을 투입해 숲 가꾸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솎아낸 나무를 운반할 도로가 없어 숲속에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결과적으로 산불 연료의 양이 늘어난다.

현재 우리나라 숲 가꾸기와 임도 건설 현황을 보면 간벌 따로, 임도 건설 따로인 경우가 많다. 임도 건설과 간벌을 연계해 추진토록 하는 작업지침이나 평가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간벌 계획을 수립할 때 간벌재 수집과 외부 반출이 가능한지, 임도는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임도 계획을 수립할 때도 간벌재 수집 작업에 활용될 가능성을 진단해 우선순위 설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기타 산림경영과의 연계 가능성을 고려해 임도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산채와 약초 재배, 양봉이나 기타 산림 휴양 시설 운영 등 다양한 산림 경영 활동에 있어 임도는 필수 요소다.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임도의 밀도가 높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 말 현재, 일본은 우리나라의 4배,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12배에 이른다. 국토면적이 우리나라의 약 100배에 달하고 엄청난 규모의 천연림을 보유 중인 미국과 캐나다도 임도 밀도가 우리나라의 2.5배다. 산업화 시대의 임도가 목재를 무분별하게 벌채하고 운송하기 위한 도로였다면 지속가능 산림경영이 화두가 된 오늘날, 임도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숲 경영을 위한 핵심 수단인 셈이다.

산지에 길이 없으면 산을 직접 이용할 방법도 없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나 약초, 꿀을 채취할 방법도 사라진다. 산의 이용이 근본적으로 어렵다 보니 지속가능하게 산림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 역시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질 못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임도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OECD 회원국 중에서 임야를 가장 잘 보호하는 국가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돌아봐야 한다. 산에 마른 나무 연료량이 증가하면서 산불 위험도 역시 커지는 상황에서 과연 입산 통제와 보호만이 능사일까. 임도를 늘려 장비와 사람의 통행을 늘리고 산에 쌓인 연료를 산 밖으로 꺼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임도와 간벌이 중요한 이유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들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면서 산림 비율도 세계 4위다. 그럼에도 목재 자급률은 15%에 지나지 않는 초대형 목재 수입국이다. 내년에 치러질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파리시는 신축 건물을 모두 목조 건물로 짓고 있다. 프랑스는 나무를 키우면서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건축 소재로 사용해 탄소를 건물에 장기간 저장함으로써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숲을 파괴하지 않고 목재를 생산하는 일이다. 임업 선진국인 캐나다, 뉴질랜드, 독일, 일본, 핀란드 등에서 발전시켜 가고 있는 지속가능 산림경영 기법에 의하면 목재 생산과 생태 다양성은 충돌하지 않고 공존 가능하다.

나무 베지 말라는 건, 플라스틱 늘리잔 얘기 건축용 목재 1㎏을 생산하는데 0.3㎏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반면 플라스틱과 철은 2.7㎏(목재의 9배)을 배출한다. 유럽과 일본, 중국은 목재의 생산과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전략의 중심임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자연 기반 해법을 주요 수단으로 해서 탄소중립에 도달하겠다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추진 중이다. 유럽은 30억 그루 나무 심기, 일본은 간벌 특별법과 목재 이용 촉진법 제정, 중국은 시진핑 2기 정부 때부터 총괄 과제로 ‘생태문명국가 건설’ 표방 등을 통해 대규모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나무를 베어야 한다” vs “베지 말아야 한다” 차원의 논의에서 벗어나 어떠한 방법으로 나무를 키우고 활용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에 합당한 방법인지를 찾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6위를 차지하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도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한국에서 나무를 베지 말라는 주장은 본의와 다르게 플라스틱 사용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목재 사용을 늘리되 우리나라 나무는 사용하지 말자는 뜻이라면 우리 집 마당은 더럽히지 말고 옆집 마당에 쓰레기를 버리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탄소 중립에 다가서려면 탄소 다배출 소재들을 하나둘씩 목재 또는 목질계 소재로 대체하기 위한 소비자와 생산자들의 공동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정읍국유림관리소 주도로 2000년과 2018년 두 차례 간벌 실험을 시행한 전북 고창의 문수산 편백숲을 2021년 12월 4일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위쪽은 실험구, 아래쪽은 대조구 현장이다. / 신유근 소장 제공

정읍국유림관리소 주도로 2000년과 2018년 두 차례 간벌 실험을 시행한 전북 고창의 문수산 편백숲을 2021년 12월 4일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위쪽은 실험구, 아래쪽은 대조구 현장이다. / 신유근 소장 제공

지속가능 산림 목재 수확의 신기술 간벌을 통한 목재 수확은 숲을 훼손하거나 숲의 회복 능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산불의 위험도를 낮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목재 수확 방법이다. 간벌로 목재를 수확하고 수확한 목재를 공중 부양해 임도로 끌어 올려 임도에서 가공하고 상차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기술을 적용하면 산림의 토양도 보호하게 되고 모두베기와 어린나무 심기, 풀베기로 이어지는 고비용 순환 구조가 아니라 간벌한 곳에서 새싹이 움터 나오는 천연 조림의 선순환 구조를 정립해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모든 숲에 임도를 건설하고 이런 방식으로 목재를 수확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공익용 산지로 지정돼 이용이 아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산림이 국내에 약 170만㏊(전체 임야의 약 27%) 존재한다. 공익용 산지에서는 목재 생산만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버섯이나 산나물 채취 등의 사소한 경영 활동도 법에 의해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흙이 없는 돌산이나 바위산에서는 목재로 사용할 만한 나무가 아예 자랄 수 없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나 역사 유적지, 희귀종 서식지 역시 공익용 산지로 지정해 통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다.

문제는 전체 산림의 약 51%에 달하는 320만㏊의 경제림이다. 나무를 심은 지 40~50년이 경과한 상태에서 적절한 간벌 조치가 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산불의 위험만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임도 망을 확대하고 산림 경영률을 높이는 데서 반전의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 임도가 있어야 산림의 건강을 살피고, 목재와 약초도 생산할 수 있어서다. 생태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투입할 수가 있다.

자원 전쟁의 시대, 나무도 전략 자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와 가스만이 아니라 나무와 식량도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산림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50년 심고 가꾼 나무들을 제때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산불의 연기로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 나무를 미래의 핵심 전략 자산으로 설정하고 관리하고 이용하는 국가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유근 녹색탄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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