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3월)에 겪은 일을 어제(4월 10일)도 겪었다. 한 여성이 편의점으로 급히 들어와서는 “어떤 남자가 뒤쫓아오는 것 같다”며 “너무 무서운데 경찰을 불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조금 뒤 경찰이 왔고, 그는 그제야 비로소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다. 우리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편의점 이야기다.
어두운 골목에 밤늦도록 홀로 불을 밝히는 곳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현대인의 필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점은 이제 시민들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되었다. 또한 여성안심지킴이, 미아 찾기 시스템, 무더위 대피소 등 사회안전망의 하나로서 지역에 순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소상공인이 이윤을 창출하는 매장 운영자를 넘어서서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함께 지키는 골목 터줏대감이 된 셈이다.
앞서 든 사례처럼 시민들은 어떤 곤혹스러운 순간이 발생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편의점 종사자들의 안전은 어떤 상태일까. 정작 편의점 종사자들은 점점 더 안전과 치안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2023년 3월 3일-경기도 시흥의 한 편의점에서 40대 남성이 흉기로 직원을 위협하고 50여만원을 훔쳐 달아남.
▲2023년 2월 15일-경기도 김포시의 한 편의점에 강도가 침입해 과도로 종업원을 위협한 뒤 금품을 갈취해 도주.
▲2023년 2월 8일-인천 계양에서 30대 남성이 흉기로 편의점주를 살해.
최근 일어난 편의점 여러 범죄다. 경찰청의 범죄 발생 장소별 통계 현황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발생한 범죄 건수는 2019년 1만4355건에서 2000년 1만4697건, 2021년 1만5489건으로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국의 편의점 5만 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편의점이 강력범죄를 노리는 이들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범죄의 범위를 넓히면 현실은 더 심각하다. 편의점주와 종사자 중에 강도, 폭행, 폭언, 희롱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편의점 범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담배광고를 가리기 위한 불투명 시트지를 든다. 청소년 등이 담배광고를 본다는 이유로 전국 편의점 점포에 불투명 시트지를 부착 중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담배광고뿐 아니라 점포의 내부까지 보이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편의점 안에서 범죄가 벌어져도 잘 안 보이니, 범죄의 발각 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행 ‘범죄예방 건축기준 고시’에서조차 소매점에 대해 정문 등에 시야를 가리는 필름 등의 설치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흡연율을 잡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조치로 인해 2021년 7월부터 전국의 편의점에 불투명 시트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조치는 효과가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흡연율은 줄지 않았다. 청소년 흡연율 역시 증가했다. 전국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학생 5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질병관리청이 실시한 ‘2021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를 보면 청소년들의 일반 궐련 담배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2021년 4.5%로 소폭 상승한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비율은 2020년 1.9%에서 2021년 2.9%로 눈에 띄게 올라갔다.
물론 시트지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잦은 사건이 발생함에도 편의점 범죄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경찰의 대응과 지방자치단체의 태도, 가맹본부의 부족한 지원 등도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24시간 운영과 1인 근무라는 특성 때문에 평소에도 편의점은 ‘주폭(음주폭력)’ 등 일상적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편의점 범죄가 일상이 되면서 점주들이 점포 내부에 전기충격기나 목검 등 호신용 도구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제 긴급한 상황에서 이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찰과 연계된 112 비상벨 버튼이 있긴 하다. 범죄 발생 시점으로부터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5~10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가맹본사 역시 편의점 근무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예방책 마련보다는 상해보험 처리를 돕는 등 사건 발생 이후 수습 과정에만 대응의 방점을 찍고 있다. 안전을 위한 본사의 시설투자가 극히 일부 점포에서 있긴 하지만, 여전히 편의점 범죄가 일상화되고 있는 실상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편의점 근무체계를 2인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수익구조가 취약해 부부가 밤낮으로 12시간씩 맞교대를 하는 실정에서 근무자 수를 늘리기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다.
도리어 대한민국의 편의점은 과포화 상태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편의점 수는 77.6개로, 일본의 인구 10만명당 44.4개와 비교하면 거의 2배에 가깝다.
이 정도면 이제 ‘편의점 왕국’이라는 타이틀은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가져야 한다. 편의점 점포 수의 증가로 편의점 본사의 매출은 급격하게 늘고 있으나, 개별 가맹점의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편의점 외벽 유리창에 붙어 있는 불투명 시트지를 제거해야 한다. 편의점 내 광고는 점포 문을 열고 들어온 고객들을 위함이다. 외부로 보이게 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담배광고를 영업소 외부에 보이게 전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의4를 들이대며 정부가 담배광고 설치의 의도성을 오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불어 지자체와 경찰이 사실상 공공성을 띠고 있는 골목 편의점을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창의적이고도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맹본사에 당부한다.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종사자의 안전조치를 위한 시설에도 제발 좀 투자를 해주면 좋겠다.
오늘도 밤을 새우며 최저임금으로 견디는, 그러면서도 위험한 이웃을 살피는 편의점주들과 알바생들의 안녕을 빈다.
<이호준 한국편의점네트워크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