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호주 자선단체인 민더루재단(the Minderoo Foundation)이 글로벌 100대 기업 순위를 발표했다. 100여개 기업 중 무려 다섯 개 국내 기업이 순위권에 들었다. 평가 주제는 안타깝게도 ‘플라스틱 폐기물 제조업체 지수(The Plastic Waste Makers Index 2023)’였다. 즉 기업이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조사하고 평가해 순위를 매긴 것이다. 보고서에서 공개한 플라스틱 폐기물 발자국 100대 기업의 순위표에 롯데케미칼, 한화케미칼, LG화학, SK이노베이션 그리고 대한유화까지 모두 5개의 한국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롯데케미칼이 한국 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플라스틱 오염의 주범으로서 ‘롯데’의 이름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롯데그룹은 그린피스가 3년 연속 진행한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롯데칠성음료는 2020년과 2021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며 당해 가장 많은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을 유발했다. 롯데마트는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을 5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에 대한 실질적인 행동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한국 5개 석유화학 기업, 순위권에
플라스틱은 99% 이상을 화석연료로 만든다. 한마디로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할수록 석유화학 기업은 이익을 낸다. 민더루재단 보고서의 상위권에 올라간 국내 기업도 모두 석유화학 기업이다. 이들 기업이 플라스틱 오염에 얼마나 많은 책임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생산한 플라스틱을 구매하는 일용 소비재(FMCG) 기업도 플라스틱 생산 확대에 큰 역할을 한다. 일용 소비재 기업은 석유화학 기업이 생산한 플라스틱 포장재의 최대 구매자로, 버진 플라스틱(석유에서 추출한 원료를 조합해 만든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그린피스에서 2021년 9월 발표한 <기후위기의 공범, 일회용 플라스틱: 거대 석유회사의 플라스틱 생산 확대를 부채질하는 일용 소비재 기업들> 보고서를 보면 대형 글로벌 소비재 기업((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 중 9개 기업(코카콜라·펩시코·네슬레·몬델리즈·다농·유니레버·콜게이트 팔모라이브·프록터 앤 갬블·마즈)이 대형 석유화학 기업인 엑슨모빌(ExxonMobil), 쉘(Shell), 쉐브론 필립스(Chevron Phillips), 이네오스(Ineos), 다우(Dow)에서 수지 또는 석유화학 제품을 공급받은 업체의 포장재를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 일용 소비재 기업이 석유화학 기업과 함께 일회용 포장재를 제한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펼쳐온 사실이 해당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이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롯데칠성과 롯데마트는 페트병, 플라스틱 용기, 각종 포장재 등 일회용 플라스틱을 판매하고 있다. 또 같은 그룹사인 롯데케미칼에서 플라스틱과 포장재를 무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들 기업이 어떠한 역학관계에 놓여 있는지 추론이 가능하다. 플라스틱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수명 주기 전 단계(가스와 석유 추출, 플라스틱 정제와 생산, 소각 및 매립, 재활용)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플라스틱의 단계별 온실가스 추정치를 살펴보면 가스와 석유 추출 및 플라스틱 정제와 생산하는 과정에서 2020년 기준 1억18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는 우리나라 58개 석탄발전소 배출량의 70%에 맞먹는 양이다. 분해 과정에서는 우리나라 자동차 1억 대의 연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1억8400~2억1300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소각과정에서도 1600만t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유엔환경총회, 협약 마련키로
2022년 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생산이 현재 예측한 추세로 계속 증가할 경우, 플라스틱의 전 수명 주기에 걸쳐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총량이 2060년 약 12억3000만t으로 2.7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2019년 18억t에서 2060년 43억t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플라스틱만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이 실로 막대한 셈이다. 특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포장재는 대부분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포장재는 버진 플라스틱(재활용 제재가 포함되지 않는 화석연료로 만드는 새 플라스틱 폴리머)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이는 전체 비섬유 플라스틱 수요의 약 40%를,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기후위기 가속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민더루보고서는 플라스틱 오염 위기가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화석연료 산업이 큰 책임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형 석유화학 회사에서 플라스틱을 더 많이 생산할수록 전 지구적 과제인 ‘온도상승 폭 1.5°C 이내 유지 목표’ 달성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려면 더 이상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댈 게 아니라 국가적으로, 나아가 범국가적인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위기를 인지한 글로벌 리더들이 지난해 3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5)에서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자는 의제를 채택했다. 그 첫 회의를 지난해 우루과이에서 시작했다. 협약은 2024년 말까지 모두 5차례 회의를 거쳐 체결할 예정이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란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양 플라스틱 포함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실효성 있으면서도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플라스틱 감축 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한 협약이다. 정부 간 협상 위원회(INC·Intergovernmental Negotiating Committee)는 국제협약을 협상할 권한을 갖는 유엔 총회의 보조 기구로 NGO, 과학자, 노동조합 등과 같은 비국가(non-state) 이해 관계자가 참여한다. 그린피스는 각국 정부가 플라스틱 문제로 야기되는 기후와 시민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강화하고, 의미 있는 협상을 지연시키는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협약을 강력하게 체결해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면 지구촌 전체가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날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환경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제협약을 기대하는 이유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내려면 즉각적인 플라스틱 사용량과 생산량 절감, 재사용과 리필 기반의 시스템 전환, 오염 유발 기업에 대한 적절한 책임 부과, 플라스틱 생산량 및 사용량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동반해야 한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도 모두 담아야 한다.
정부간협상위 회의 한국 개최 추진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우리가 강력한 협약 체결을 바라는 반면 이번 민더루재단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은 오롯이 이익 창출을 위해 협약이 갖는 구속력이 약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논의에 참석하는 각국 정부가 기후 위기와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석유화학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목소리보다는 지구 환경 그리고 인류의 건강을 위한 강력한 협약 체결에 힘써야 한다.
이번 협약을 위한 논의에 한국 정부도 외교부를 주축으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의 협상단을 꾸려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 정부는 2024년 말 개최 예정인 협약의 마지막 정부간협상위원회(INC) 회의를 한국에서 열겠다는 의사를 개진했다. 한국 정부는 본 협약이 강력하고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협약이 될 수 있도록 대형 기업의 이익보다는 생산 단계에서부터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겠다는 최종 목표를 가지고 플라스틱 오염에서 지역사회, 인간, 더 나아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과감한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우리가 플라스틱의 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다.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 국민 역시 지도자들이 실질적인 협약을 체결해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량을 줄일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향후 INC 회의에서도 대형 기업의 영향력을 배제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