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설악 케이블카 동의, 환경부가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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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자연을 담다! 사람을 품다! 미래를 열다!”

2023년, 세 번째로 맞이한 ‘국립공원의 날’(3월 3일) 주제였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직접 서울신문의 칼럼에서 국립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해당 칼럼은 교육적 측면도 있고, 꽤 읽기에 편한 글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말이다.

2015년 8월 26일 여러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종교계와 정당들이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2015년 8월 26일 여러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종교계와 정당들이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한화진 장관과 환경부는 칼럼 발행일 하루 전인 지난 2월 27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조건부 동의’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립공원이자 백두대간 보존지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 등 보호받을 이유만 나열해도 한 문단을 꽉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설악산이다. 이곳에 3.3㎞짜리의 케이블카를 꽂겠다고 말을 뱉고, 파렴치한 태도로 국립공원의 자연생태계를 지키겠다고 언급했다. 황당무계 그 자체다.

여러 시민단체, 환경단체, 종교계와 정당들은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40여년 동안 설악산의 풍경과 생태계, 그곳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모두가 분노했다. 녹색당 역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투쟁을 오랫동안 함께했다. 2016년 녹색당은 논평을 통해 “케이블카 걸려고 설악산을 새로 쌓냐”며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강하게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환경부는 전문기관의 공식적 평가까지 무시하면서 케이블카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기관조차 반대하는 케이블카 개발사업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부정적 의견과 우려를 표출한 기관은 한두 곳이 아니다. 2021년 발행된 국립공원연구원 보고서는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 주변 지역의 환경·식생 훼손이 심각하고, 토양 유실 문제 역시 복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20일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은주 의원을 통해 “자연 원형이 최우선으로 유지·보전돼야 하는 공간에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삭도(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기상과학원,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등도 꾸준히 케이블카 개발이 생태계 영향과 안전성 등과 관련해 우려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환경부가 풍속 예측 모델링을 통한 설계로 강풍으로부터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했을 때조차 국립기상과학원은 사업 대상지의 실제 풍속이 아닌 모델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하거나 유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렇듯 국책연구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경부가 승객의 안전을 볼모로 한 막무가내식 개발사업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기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 역시 한국에 1%도 되지 않는 핵심적인 자연공간을 이런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그 어떤 부처보다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의 보전’ 책임이 있는 부처가 나서서 찬성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이런 결정들이 앞으로 미칠 영향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이러니 환경부가 아니라 ‘환경파괴부’라는 말까지 나온다.

2017년 6월 16일 녹색당이 주최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긴급기자회견 / 녹색당 플리커

2017년 6월 16일 녹색당이 주최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긴급기자회견 / 녹색당 플리커

난개발과 개발업자 주머니 부풀리기에 멍드는 ‘산들’ 케이블카 사업에 의한 ‘생태계 파괴’가 문제의 전부도 아니다. 2015년부터 ‘케이블카 사업 적자’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전북환경운동연합(2015년)에 따르면 전국에 운행 중인 케이블카 중 85%가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즉 케이블카는 관광객을 부르는 ‘경관’이나 ‘경제성’ 측면에서 살펴봐도 다수 지역주민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어떠한 ‘도구’도 되지 못하는 셈이다. 케이블카는 오히려 아름다운 설악산을 민둥산으로 만들고, 축적된 시간 속에서 이뤄진 멸종위기종인 산양 서식지를 비롯한 생물 다양성을 헤집고 있다. 부처의 본령을 잊은 환경부가 내세우는 3.3㎞짜리의 욕심에 의해 수억년의 역사를 지닌 설악산 국립공원의 경관을 훼손하는 일이 과연 옳을까.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소수 개발사업자의 잇속 챙겨주기에 불과한 일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이번 환경부의 결정으로 전국 지자체가 케이블카 꽂기 사업에 ‘우후죽순’ 격으로 달려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검토의견까지 배제하면서 ‘정치적 허가’를 내어준 환경부로 인해 산이 온통 포클레인 밭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이유 단 한 가지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설악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켜오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번에 순식간에 지워지고 말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주요한 진실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과 경제가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구의 한계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고 그 사회 안에서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민과 싸우는 윤석열 정부와 한화진의 환경부 환경부의 결정으로 발생하게 될 또 다른 위험은 지역사회가 서로 갈등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환경이 파괴되는 일보다 더 심각한 ‘지역생태계’ 파괴일 수 있다. 충분한 의사소통 과정 없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 없이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행정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지역사회를 붕괴시키고 병들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민주주의와 정치가 실종된 사회에서 나타나는 위기의 대표적 모습이다.

시민들은 설악산과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한화진 장관 사퇴와 환경부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불통’이라는 일관된 행보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와 한화진 장관의 환경부는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들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삶을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지자체장 역시 마찬가지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 3월 3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강원도에 다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100% 이게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게 바로 지방자치, 자치분권의 묘미 아니겠냐”라는 무책임한 말을 했다.

강원도의 생태계와 지역사회, 시민들의 안전과 세금까지 볼모로 잡고 위험하게 ‘자치분권의 묘미’를 즐기는 도지사에게 어떻게 강원도 도정운영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단 말인가.

2017년 10월 30일 녹색당 주도로 개최한 설악산 케이블카 불법강행 규탄 기자회견 모습. / 녹색당 플리커

2017년 10월 30일 녹색당 주도로 개최한 설악산 케이블카 불법강행 규탄 기자회견 모습. / 녹색당 플리커

“○○○을 그대로”라는 말 환경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건부 동의뿐만 아니라 지난 3월 6일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도 ‘협의 완료’ 의견을 제출했다. 이미 도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제주도민조차 반대하는 사업이라는 것이 알려졌고, 제주도는 도민 의견수렴을 통해 후속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약속까지 한 바 있다. 2021년에는 환경부가 직접 ①항공기-조류 충돌 영향 및 서식지 보전 ②항공기 소음 영향 재평가 ③법정보호종 관련 ④숨골 관련 등을 이유로 사업을 반려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1년이 조금 넘은 현재, 반려 사유가 ‘보완’됐다는 이유를 들며 환경부가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제주 제2공항의 경우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가 “북핵위기가 임박했을 경우 제주도를 전략 도서화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최종 보고서를 채택한 사실까지 드러나며 민간 공항이 아닌 군사기지 목적의 신공항 건설추진이 아니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제주도에 ‘쳐들어온’ 해군기지로 몸살을 앓았던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제발 제주도를 그대로 좀 놔두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이 글을 쓰던 날, 정말 우연히 길을 가다가 한 어린이가 잡고 있던 보호자의 손을 놓고 맞은편의 인왕산을 가리키며 “난 저 산이 참 예뻐”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어린이는 길가에 서서 빌딩 사이로 머리를 빼꼼하게 내민 인왕산과 사진까지 찍고는 걷던 길을 갔다. 산은 그렇다.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언제든지 천혜의 감명을 준다. 산은 그대로일 때가 가장 산답고 아름답다. 그런 산이, 그런 국립공원이 자연을 담고, 사람을 품고, 미래를 열 수 있다.

<김혜미 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전 청년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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