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마친 당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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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말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다가 당혹한 적이 있다. 잠이라도 깰까 싶어 카페를 가려는데, 집 건물 앞 뒤 옆 가릴 것 없이 차량이 빼곡했다. 대학가 인근이라 평소 주말 아침엔 사람도 차도 찾기 어려운 곳이다. 카페 안 키오스크 앞에만 사람이 두 줄이었다.

조문희 기자가 2007년 2월 10일 싸이월드에 올린 부모님 사진

조문희 기자가 2007년 2월 10일 싸이월드에 올린 부모님 사진

주문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슬쩍 보니 카페 안 사람들의 나이가 비슷한 듯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즈음. 누군가는 신문을 봤고, 다른 이는 태블릿 PC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중간중간 눈을 감은 채 무언가 웅얼거렸다. 대학가 인근에 수십명이 모인 이유를 알기 어려운 구성이었다.

정체를 알게 된 계기는 한 부부의 대화였다. 안경을 쓴 남성이 창가에 앉은 여성의 어깨를 주무르며 끊임없이 무언가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 “다 잘 될 거야.”, “00 엄마, 할 만큼 했어.” 듣자 하니 자녀의 시험 이야기였다. 여성은 한 손을 반대편 어깨 위로 올려 남성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좀 편하게 살자”는 남편의 말에 그는 울다 웃다 했다.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나선 길에서 ‘00 대학교 수시모집 논술고사 시행’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최근 복원한 싸이월드에서 찾아낸 옛 사진 한 장이 기억난다. 주름 없이 팽팽한 얼굴, 흰 가닥 하나 없이 검고 단단한 머리칼의 부모님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다. 한가득 눈이 쌓인 길 위로 팔짱을 낀 그들의 뒤편에 학교 건물이 하나 보인다. 업로드 날짜는 2007년 2월 10일. 아마도 내가 정시로 수능을 치른 뒤, 논술 시험을 보러 간 날의 풍경이지 싶다. 이때의 결실로 그간의 고통 모두가 보상받았다고, 부모님은 서로 안아주셨을까.

그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지금은 안다. 내가 입학하고 나니 동생의 입시가 시작됐다. 동생이 대학에 가고 나니 큰아들의 미래가 고민이었다. 가을이 오면 “시몬 너는 좋으냐”는 프랑스 시인의 시 ‘낙엽’을 읊던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시집을 읽지 않는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배워 사람들을 가르치는 수준에 이르렀던 스텐실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요즘은 왜 취미생활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늙어서” 또는 “바빠서”라고 답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소중한 것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가는 것이다”라는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문장을 떠올린다. 자식이 소중해 자신을 줄여가는 존재가 부모인가 짐작해보며.

수능 날 기자들이 고등학교 앞에서 쓰는 스케치 기사에서 주인공은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다. 함께 고생한 부모는 조연이거나 배경에 그친다. 대학 입시를 위해 온 가족이 총력전을 치르는 이 사회 특유의 현상을 긍정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 삶을 통과해 낸 이들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공정했는지는 궁금하다.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가끔 하는 상상에 오늘은 이렇게 답하고 싶다. 부모님에게 고생하셨다고 꼭 말 건네기를. 한 번뿐인 인생, 자식 이외의 것으로도 채우시라고 부탁하기를. 앞날을 풍요롭게 할 취미 하나쯤 만들어가시라고 제안하기를. 가능하면 함께하기를. 하지만 시간은 돌릴 수 없다. 그저 이번에 입시를 마무리한 학생들에게 바라본다. 나와 같지 않기를. 눈밭 위, 젊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하는 새해 기도다.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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