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과 산산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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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로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한 달을 맞았다. 참사 사흘 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출범했고, 언론 취재 등을 통해 참사 당일의 ‘진실의 조각’ 일부는 드러났다.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의문도 여전히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이번 참사는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을 앞둔 지난 11월 27일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 성동훈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을 앞둔 지난 11월 27일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 성동훈 기자

윤 대통령은 참사 한 달이 지나도록 공식 사과를 하지도, 이 장관을 포함한 책임자 그 누구도 문책하지 않았다. ‘과학적 강제 수사’라는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을 사용하며 “진상 규명 우선”이란 말만 반복했을 뿐이다. 행안부는 정부의 사과를 기다리던 참사 유족들이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나선 다음 날인 30일에야 유가족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의중을 헤아릴 수 있는 단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드러났다. 11월 24일 시작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 국면이다. 강경대응을 예고하는 정부의 메시지 속에 ‘이태원 참사’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이 장관이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한 말이었다. 그는 “재난안전기본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된다”며 “국가핵심기반이 마비됐을 경우에는 코로나19, 이태원 참사와 똑같이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간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돼왔다. 소방노조가 이 장관을 업무상과실치사상,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되기도 했다. 그런 이 장관이 파업에 따른 국가 피해를 강조하기 위해 이태원 참사를 비유 대상으로 꺼내들었다. 야당과 노동계는 “부적절한 비유”라며 즉각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파업 이틀째인 11월 25일 한남동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연 만찬도 비판 대상에 올랐다. 한 참석자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넥타이를 느슨히 풀고 (중략) 땅콩 놓고 맥주 마시면서 얘기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태원 참사에 준하는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인 행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통치권자인 대통령과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인 행안부 장관에게 이태원 참사는 ‘내 일’이 아닌 듯하다. 연일 ‘자유’를 강조하지만 언론 자유와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는 외면하는 모순처럼 권력자의 권한만 누리려는 이 정부에 도의적·정치적 책임은 그저 ‘남 일’일 뿐이다. 참사 이후 출범한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TF’ 단장 자리를 이 장관에게 맡긴 것만 봐도 그렇다. 기-승-전-‘수사’로 책임을 가리겠다는 기조 아래 수사기관의 ‘칼춤’만이 난무한다. 그사이에 수사대상이던 서울 용산경찰서의 공공안녕정보과 계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한 이태원 참사 유족은 11월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친구가 보내온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 시구를 보며 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자유란 이름의 ‘각자도생’이 철학이 된 나라. 한편의 시에 기대 내일을 맞이할 메마른 얼굴들을 떠올리며 11월을 떠나보낸다.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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